내용요약 저금리 시절 손 쉬웠던 자본확충...금리인상기 비수로 돌아와
올해 초 국내 보험사의 RBC비율 /금융감독원
올해 초 국내 보험사의 RBC비율 /금융감독원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이행 사태의 파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당초 이를 승인한 금융 당국은 이러한 여파가 의외인 것처럼 갈팡질팡하는 행보를 보여빈축을 사고 있다.

결국 흥국생명은 9일,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전액 조기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당국의 '판단미스'에 대한 비판은 야당을 중심으로 시장에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 10월 28일, 금융 당국에 2017년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5년 만기일인 9일 조기상환하지 않겠다며 당국의 승인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된 파장이 확산되자, 금융위·금감원·기재부는 지난 11월 2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이와 관련된 일정과 계획 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흥국생명 측과 소통해 왔다고 해명했다.

특히 "흥국생명은 수익성 등, 경영실적이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이다"며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기상환을 청구하는 콜옵션은 말 그대로 옵션이다. 콜옵션의 미행사가 법적으로 문제될 점은 없다. 이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약정에서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내용까지 포함한다.

우량 기업이나 금융사들은 신종자본증권을 통해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 이는 채권이지만 만기가 없으면서 발행자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여겨지기에 보험사의 경우 RBC비율 관리를 위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

통상 신종자본증권은 콜옵션 행사가 관례다. 투자자들 역시 만기가 없는 채권이 아니라 5년 후 콜옵션을 행사하는 물건으로 여기고 투자했던 것이다. 여느 채권처럼 수익률이 아니라, 신종자본증권은 수의상환수익률(YTC, Yield to Call)을 계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콜옵션 기간까지 보유하는 것을 가정할 때 산출한 수익률을 가리킨다.

흥국생명은 이 같은 '관례'를 깨며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뢰도를 뒤흔든 것이다. 문제는 현재 국내 보험사들의 자기자본 대비 자본증권 비중이 늘었다는 점이다. 생명보험사들은 지난 2017년 8.5% 수준에서, 올해 상반기는 38.6%까지 치솟았다. 손해보험사 역시 같은 기간 17.7%에서 39.6%로 높아졌다.

그동안 보험업권은 정체된 시장으로 평가받아왔다. 내부 경쟁도 심화됐다. 게다가 저금리 국면에서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등의 발행여건은 대단히 좋았다. 결국 손쉽게 자본확충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최금 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상황이란 점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나 배당 같은 비용이 급격히 높아졌다. 흥국생명이 이번에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약정처럼 조기상환을 안 하는 대신 이자를 높여주더라도, 새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데 드는 금융비용보다 싸게 먹힌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흥국생명이 회사의 입장에서 합리적 결정을 한 것이라 해도 금융시장과 투자자들의 시선에선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당장 11월만 해도 ▲DB생명 신종자본증권 300억원 ▲푸본현대생명 신종자본증권 400억원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 900억원 등 줄줄이 콜옵션 행사가 밀려 있다. 또한 내년 상반기에만 1조 8000억원 넘게 콜옵션이 도래한다. 하반기까지 합하면 3조 4470억원이다.

다만 시장에서 흔들린 신뢰도가 얼마가 지나야 복구될 지는 미지수다. 더불어 그동안 국내 금융기관들의 채권에는 그 여파가 계속될 것이다. 때문에 금융 당국의 '판단미스'라고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흔들린 채권시장이 사실 아직 수습이 된 것인지도 불투명한 시점이다. 따라서 금융 당국은 흥국생명과의 협의 과정에서 이 같은 상황을 충분히 주지하고 '협의'를 이어갔어야 한다. 만약 금융 당국이 흥국생명과 콜옵션 행사를 이끌어내는 협의를 가져갔다면 사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험사들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지급여력비율(RBC) 역시 새 회계기준 도입을 앞두고 있다. 최근의 금리인상 국면에서 올해 초부터 보험사들의 RBC비율이 급락하자 금융 당국은 6월 결산부터 책임준비금 적정성평가(LAT) 잉여액 40%를 매도가능채권 평가손실 한도 내에서 가용자본에 가산할 수 있도록 했다. RBC비율은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값이기에 분자가 커지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보험사들의 숨통을 틔워준 것이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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