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국정감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이젠 예산심사를 앞두고 있다. 여야는 국정감사 기간 동안 치열하게 맞붙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쟁에 매몰되면서 민생은 뒷전으로 내몰렸다. 언론은 올해도 정책 감사 대신 정쟁에만 매몰됐다며 여야를 싸잡아 비판했다. 국회 예산심사는 내년 국정운영 방향을 세우는 중요한 일정이다. 2024년 국가 예산은 올해보다 2.8p% 소폭 증가한 656조9,000억 원 규모다. 정부는 건전 재정을 앞세워 R&D 예산(16.6% 5조2,000억 원 삭감)을 비롯한 여러 항목을 칼질했다. 이곳저곳에서 아우성이다. 이 가운데 정부안보다 78% 삭감된 새만금SOC 예산은 예산심사에서 태풍의 눈이다.

삭감 폭도 이례적이지만 근거 또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만금SOC 예산 삭감을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정부여당과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전북 민심은 보복성 삭감으로 규정하고 있다. 새만금 세계잼버리 실패에 따른 책임을 전북과 새만금 SOC에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삭감, 형평성을 잃은 신규 공항 예산편성, 그리고 일방적인 국책사업 중단에 전북 민심은 들끓고 있다. 국민의힘 일부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출구를 찾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만일 삭감 예산을 정상화하지 않는다면 국가권력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획재정부가 날린 새만금 SOC 예산 삭감 규모는 무려 78%에 달한다. 영화 ‘극한직업’ 속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는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규모 삭감이다. 사실상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라는 것과 같다. 애초 정부 부처에서 반영한 새만금 SOC 예산은 6,626억 원이었다. 한데 기재부는 5,147억 원을 싹둑 잘라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새만금사업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적인 삭감은 전북 여론에 불을 지폈다. 전북 민심은 비정상적인 예산 삭감에 폭발 직전이다. 새만금 SOC사업 가운데 특히 국제공항은 다른 지역 신규 공항 사업과 비교해도 현저하게 형평성을 잃었다.

기재부는 내년도 새만금 국제공항 예산(790억 원) 가운데 89%를 칼질했다. 국회로 넘어온 예산은 66억 원에 불과하다. 2019년 예타 면제를 받고 추진 중인 새만금 국제공항은 애초 2023년 개항 예정이었다. 그러나 차일피일 지연되다 설계 용역업체 선정 단계에서 중단 위기에 처했다. 반면 부산 가덕도 신공항 내년 예산은 정부 요구보다 3.3배(1,647억 원에서 5,363억원) 증액됐다. 2030 부산 엑스포를 대비한 것이라는데 궁색하다. 유치 확정도 안 된 엑스포를 내세워 개항 시기를 5년 앞당기고 증액한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북 정치권은 새만금 예산을 깎아 가덕도에 줬다며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새만금 국제공항(8,077억원)과 가덕도 신공항(13조원)은 사업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충남 서산공항(사업비 532억원)과 비교해도 형평성 논란은 확연하다. 서산공항은 올해 5월 예타 대상 사업에서 탈락했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설계비로 10억 원을 편성했다. 수년째 추진 중인 새만금 국제공항과 비교하면 균형을 잃었다. 2030년 개항 예정인 대구경북 신공항(사업비 2조6,000억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 10월 예타 면제에 이어 적정성 검토에 들어갔다. 대구 신공항이 개항하면 영남권은 부산 김해공항과 가덕도 신공항까지 국제공항만 3개다. 수요 예측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영호남 차별로 확산되는 이유다. 심지어 울릉공항마저 50인승에서 80인승으로 설계 변경했다.

새만금 국제공항에만 유별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잼버리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만만한 전북과 새만금 사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야당은 부당한 국가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할 책무가 있다. 특정지역을 이지메하고 예산 보복을 단행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만약 소지역주의로 방관한다면 언제든 자기지역 문제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전북은 이웃한 전남(무안공항)과 충남(서산공항)이 새만금 국제공항을 견제한다며 서운함을 갖고 있다. 전국 15개 공항 중 인천·제주·김해·김포공항을 제외한 지방공항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지방공항은 대표적인 선심성 사업이다. 차제에 지방공항 문제를 총체적으로 짚되 부당한 국가권력에는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 또한 특정 지역을 제물로 삼는 치졸한 행태를 멈춰야 한다. 전라북도 관계자는 “한쪽은 예타에서 탈락한 공항 건설을 끼워 넣고, 다른 한쪽은 유치 확정도 안 된 엑스포를 이유로 쓰지도 못할 돈을 퍼붓는다면 지역차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균형 잡힌 예산 지원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디에 살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국회 예산심사에서 새만금 SOC 예산을 복원하는 건 어쩌면 상식을 복원하는 일이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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