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현실성 없는 비전에 갸웃
사실상 '외부인', 불안
골칫거리인 '오버행' 이슈
국민연금공단 사옥 전경. /국민연금공단 제공
국민연금공단 사옥 전경. /국민연금공단 제공

[한스경제=이소영 기자]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가 OCI그룹과의 통합 여부를 두고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어머니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장녀 임주현 부회장 측에 힘을 실어줬다.

국민연금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일각에선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특히 임종윤·종훈 형제 측의 '시총 200조' '바이오의약품 100개 생산'은 당장 실현 불가능한 주장으로 사실상 소액주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국민연금 "이사회 제안, 주주가치 제고에 더 부합"

국민연금은 입장문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 중 이사회 안과 주주제안이 경합하는 이사 및 감사위원 각 선임 안건에 대해 이사회의 안이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미사이언스 측이 제안한 ▲임주현·이우현 사내이사 각 선임 ▲최인영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박경진·서정모·김하일 사외이사 각 선임 ▲박경진·서정모 감사위원 각 선임 안건에 ‘찬성’을 표하고, 그외 주주제안(형제 측)으로 추천된 후보들의 선임 건에 대해서는 ‘반대’를 결정했다. 

국민연금의 결정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불안을 회피하고 안전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즉, 임종윤·종훈 형제 측의 손을 들어주면 '시장에 불안을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허황된 목표'와 '현실성 없는 방법'의 콤보

대표적으로 형제 측의 '시총 200조 달성'은 허황된 목표라는 것이 시장 지배적인 시각이다.

형제 측은 지난 25일 "미국 인디애나폴리스라는 소도시에 본사를 둔 일라이 릴리는 최근 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을 이끌며 시총 981조원에 달했다"며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도 시총 777조원 수준이다. 이를 비춰보면 시총 200조 달성을 향한 한미그룹의 도전은 완전히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고 말했다.

시총 200조 규모는 글로벌 파마 업계 내 매출 10위권 이내를 노린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세계 10위권 안에 든 아시아 대표 제약바이오 기업인 다케다제약의 시총(27일 기준) 61조 5233억원을 3배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무엇보다 신뢰가 가장 떨어지는 대목은 시총 200조 달성을 위한 미래 계획이다. 형제 측은 "한미그룹이 450여개의 의약품을 만들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바이오의약품 100개를 생산하겠다"고 말했다.

시총 200조·바이오의약품 100개 생산, 내부 사정 모르는 허황된 주장 

그러나 회사 측은 "내부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허황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한미그룹의 평택 플랜트와 관련해 위탁생산(CMO) 사업이 논의되는 것은 미생물 배양을 통한 글로벌 제품 공급이 가능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제 측이 제시한 론자나 애보트처럼 다양한 종류의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기는 어렵다.

형제 측 제안처럼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려면 신규 공장을 건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한데 이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사실상 '외부인', 회사에 대한 이해 문제

고(故) 임성기 회장은 장남인 임종윤 전 한미약품 사장을 중국 법인에 보내 경영 수업을 시킨 바 있다. 그러나 임 사장은 가업과는 잠시 거리를 둔 채 DX&VX와 코리그룹 등을 설립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10년간 집중해왔다. 

회사 측은 "지난 10년간 임종윤 전 사장이 한미에 출근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한미약품 이사회에도 출석하지 않았다"며 "2023년 상반기에 5차례 열린 한미약품 이사회에 임종윤 사장은 단 1회 참석한 데 비해 개인 회사인 DX&VX의 2023년 상반기 이사회에는 100% 참석했다"고 지적했다. 임 전 사장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형제 측은 "회사 측 주장은 인과관계가 뒤바뀐 지적"이라며 "오랫동안 한미그룹의 경영권에서 배재됐고 지속적 사임 요구를 받았다. 한미그룹에서 진행하려고 했던 다양한 사업들이 방해받았다"고 반박했다.

오너 일가의 일원이지만 사실상 경영진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스스로도 '외부인'임을 인정한 셈이라 국민연금의 불안함이 한층 커졌을 것으로 업계는 해석한다. 

'프리미엄' 얹은 지분 매각 의혹

주주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투자한 기업의 가치 하락이다. 특히 형제 측에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프리미엄을 얹은 지분 매각'은 국민연금과 소액 주주 입장에서 뼈아픈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또한 한미그룹은 매년 매출의 약 20% 안팎을 R&D(연구개발)에 투자해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그러나 해외 자본에 대주주 지분이 흘러가게 되면 회사의 정체성 상실은 물론, 국부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송영숙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두 아들이 회사를 지키는 일보다 '프리미엄을 받고 자기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일정 기간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는 해외 자본에 결국 지분을 매각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처 불투명' 임종윤 개인회사, 한미그룹 자산 흘러갈 수도 

임종윤 전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DX&VX와 코리그룹의 운영과 자금 출처에 대해 파악이 어려운 점도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우는데 한몫했다.

임주현 부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실체가 불분명하고 재무건전성도 의심되는 DX&VX와 코리그룹을 한미와 합병하거나, 심지어 부정한 자금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한미그룹의 주가 하락의 원인에 대해 "오너 일가의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식을 내다 팔 수 있다는 등의 '오버행' 이슈가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역시 지속적인 오버행 이슈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대주주로서는 그룹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온 현 이사진의 손을 들어주는 게 안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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