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고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한국스포츠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민호, 이겨레, 박윤호, 주요한(왼쪽부터).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한국스포츠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민호, 이겨레, 박윤호, 주요한(왼쪽부터).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도=한스경제 이정인 기자]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2시간여를 가면 '천혜의 섬' 덕적도가 나온다. 덕적도는 ‘큰물섬’이란 우리말을 한자화한 것이다. 수심 깊은 바다에 있는 섬이란 뜻이다. '섬사람들이 어질고 덕이 많다’고 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인구 1300여 명의 조용했던 이 섬에 최근 생기가 돌고 있다. 전국을 통틀어 단 하나뿐인 섬마을 고등학교 야구팀 덕적고 야구부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공식 창단한 덕적고 야구부는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학교를 구하고 지역 사회에 희망을 싹 틔웠다. 덕적도 주민들에게 야구는 '일반 공놀이'가 아닌 '희망의 상징'이다. 한국스포츠경제가 야구 인생 역전 홈런을 꿈꾸는 덕적고 야구소년들을 만나 봤다.<편집자 주>

"파이팅 한번 가자!", "어이!"

인천 옹진군 덕적도 서포리 종합운동장. 조용하던 섬마을 운동장이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에 있는 서포리 종합운동장은 덕적고 야구부의 훈련장이다. 덕적고 '야구 미생'들은 매일 이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꿈을 키우고 있다.

덕적고는 2022년 7월 기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된 고교야구팀 89개 가운데 유일한 섬마을 야구팀이다. 지난해 12월 공식 창단해 올해 처음 고교야구 주말리그에 참가했다.

덕적고 야구부는 장광호(55) 초대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 4명과 28명(1학년 7명, 2학년 12명, 3학년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선수 모두 타지역 출신이다. 전교생 14명에 불과했던 덕적고는 지난해 야구부가 생기고 육지 학생들이 속속 전학 오면서 폐교 위기를 넘겼다. 

덕적고 투타 기둥은 3학년 최민호(19), 주요한(18·이상 외야수), 박윤호, 이겨레(18·이상 투수)다. 

최민호와 주요한은 외야의 두 축이다. 최민호는 수준급 컨택트 능력과 빠른 발, 넓은 수비 범위를 갖춘 타자로 올해 고교 무대에서 타율 0.319(47타수 15안타), 5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851을 기록하고 있다. 주요한 역시 공격과 수비를 모두 갖춘 외야수로 올해 타율 0.316(57타수 18안타), 5도루를 마크했다. 

덕적고 이겨레가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이겨레가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박윤호와 이겨레 덕적고 마운드의 원투펀치다. 박윤호는 8경기에서 1승 4패 평균자책점 3.18, 30탈삼진의 성적을 적어냈다. 이겨레는 올해 덕적고 투수 중 가장 많은 11경기에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5.19, 19탈삼진을 기록했다. 장광호 감독은 "박윤호는 우리 팀 에이스로 제구력이 뛰어나다. 이겨레는 좋은 구위를 갖추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박윤호는 대전제일고, 최민호·이겨레·주요한은 동산고를 다니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 때문에 서해를 건너 덕적도로 들어왔다. 최민호는 "덕적고 전학을 제안받았을 때 부모님과 저 모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야구 실력을 키우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덕적고 전학을 택했다"고 밝혔다. 

외부와 떨어져 있는 지역 특성상 온전히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게 덕적도 생활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올해 서포리 종합운동장과 학교 운동장에 조명과 펜스 등이 설치되면 훈련 환경도 더 좋아질 전망이다. 이겨레는 "운동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공기가 너무 좋아서 몸이 좋아진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덕적고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한국스포츠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요한, 이겨레, 최민호, 박윤호(왼쪽부터).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한국스포츠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요한, 이겨레, 최민호, 박윤호(왼쪽부터).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야구할 땐 프로선수 못지않게 진지하지만, 그라운드 밖에선 영락없는 소년들이다. 혈기 왕성한 10대 선수들에게 오지 섬 생활의 애로사항을 묻자 솔직한 답이 나왔다. 최민호는 "여가 생활을 하는 데 제약이 있어서 가끔은 심심하다"고 말했고, 이겨레는 "야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음식점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며 웃었다.

덕적고만의 장점을 꼽아 달라고 하자 '팀워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모와 떨어져 외부와 단절된 섬에서 생활하는 덕적고 선수들은 서로 돕고 의지하며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가고 있다. 이겨레는 "야구부원이 다 같이 생활하다 보니 소통할 기회가 많다. 매주 월요일에 팀 미팅을 하는 등 야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눠서 좋다"고 말했다. 주요한은 "팀워크 하나만큼은 어느 팀에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우리 선수들이 똘똘 잘 뭉쳐 있다"고 전했다.

끈끈한 팀 분위기를 조성한 일등 공신은 주장 최민호다. 1년 유급해 동기들보다 1살 많은 최민호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하나로 묶었다. 장 감독은 "우리 아이들이 동료애가 좋다. 주장 최민호가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고 있어서 너무 고맙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주요한은 최민호의 리더십을 평가해 달라는 말에 "우리 팀에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능력을 갖춘 선수는 민호 형뿐이다"라고 칭찬했다. 박윤호는 "민호 형은 리더십이 정말 좋다. 다만 너무 착해서 걱정될 때도 있다"고 웃었다.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의 훈련지인 서포리 해안은 고교와 대학 야구부의 단골 동계 전지훈련장소였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35·토론토 블루제이스)도 동산고 시절 서포리 해안에서 동계 훈련을 했다. 덕적고의 야구 꿈나무들도 과거 류현진이 그런 것처럼 덕적도 해안을 달리며 야구 인생 역전 만루 홈런을 꿈꾼다. 최민호는 "덕적도 출신은 아니지만, 덕적고는 이제 제 모교다. 책임감이 생긴다. 저희가 잘해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던 것들을 다 보여주고 싶다. 꼭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루고, SSG 랜더스의 최지훈(25) 선수처럼 모든 면에서 팀에 도움이 되는 다재다능한 선수가 되겠다"고 힘줬다. 주요한은 "야구에 대한 간절함이 커서 덕적고에 왔다. 육지 팀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SSG 박성한(24) 선수처럼 어떤 공이 와도 대처할 수 있는 뛰어난 타격 능력을 갖춘 타자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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