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유럽 한쪽에서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우리와 무관할 것 같은 전쟁은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당장 유가와 야채류, 밀가루 제품 인상에 불을 댕겼다. 여파는 주식시장과 환율 금융부문까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문명사회에서 벌어지는 인명 피해는 가슴 아프다. 유엔인권사무소는 지금까지 민간인 5024명이 죽고 6520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7월 13일 기준). 하지만 마리우폴에서만 2만명이 넘는 민간인이 숨진 걸로 전해진다. 또 돈바스 등 러시아가 통제하는 지역에선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왔는지 알 수 없다. 실제 사망자는 훨씬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카자흐스탄과 스리랑카 사태도 많은 생각꺼리를 남긴다. 올해 1월 카자흐스탄 알마티는 반정부 시위로 새해를 열었다. 일주일 남짓 250여명이 죽고 5000여명이 다쳤다. 체포된 시위자 545명은 최근 유죄 판결 받았다. 지난 한주 알마티에 머무는 동안 시위 현장을 돌아봤다.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공화국 광장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6개월 전 수많은 사람이 죽고 피 흘린 현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검게 그을린 대통령궁과 시청사, 방송국 외벽에서 치열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할 뿐이다. 뙤약볕 아래 복원 공사가 한창인 건물은 폴리스라인으로 출입금지였다.

카자흐스탄 사태는 LPG가스 인상에서 시작됐다. 보다 근본적 이유는 장기 집권에 따른 부패와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양극화가 문제였다. 전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는 2019년 3월 물러날 때까지 30년 동안 카자흐스탄을 지배했다. 후임 토카예프는 전임자 그늘에 가린 꼭두각시였다. 권력기관장 대부분은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부와 권력을 독점했다. 토카예프는 진압에 러시아군을 투입했고 숙청에도 성공했다. 러시아군은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과 달리 유혈 진압했다. 소수가 권력을 장악하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자국민을 진압한 카자흐스탄 시위는 국가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했다.

스리랑카 반정부 시위 역시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향한 분노였다. 물가 폭등에서 시작된 시위는 대통령궁 점령, 대통령 해외 도피까지 거침없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행금지와 체포, 구금으로 대응했다. 시위가 격화하자 총리와 장관 26명은 총사퇴했다. 해외로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e메일로 사임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경제난은 덤이다.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소비자 물가가 전년 대비 58.9%(식‧음료는 76%) 폭등했다고 발표했다. 라자팍스 가문은 오랜 동안 통치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 총리, 현직 대통령은 총리 동생이다. 그동안 국가를 유지해온 게 다행일 정도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고 자부하는 우리는 카자흐스탄과 스리랑카보다 얼마나 나을까. 이들을 독재국가, 저개발국가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또 ‘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에 충실하다고 자신할 수 있나.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퇴행적 행태는 더는 거론할 필요가 없다.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를 5년 만에 심판한 건 집권 내내 보여준 독선과 ‘내로남불’에 신물났기 때문이다. 전임 정권은 기득권을 강화하고 진영대결에 올인했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장관에 임명하고 탈원전을 고집했다. 또 설익은 소득주도성장과 임대차3법, 부동산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서민 삶을 황폐화시켰다.

그러면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은 제대로 하고 있나. 여론조사 지지율로만 가늠하자면 빠르게 실망으로 바뀐 모양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다. 출범한지 갓 두 달을 넘긴 정권이 받아든 참담한 성적표다. 유례가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조짐이다. 그런데도 “여론조사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며 자위하고 있으니 인식 수준은 한가롭다. 여론은 곧 민심이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걸 카자흐스탄과 스리랑카 반정부 시위에서 확인했다. 언제까지 ‘자뻑’에 취해 자신에게 관대할 것인가.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인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직시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서초동 검찰을 용산으로 옮겨 놨다는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검찰공화국을 불식시키는 게 첫째다. 서오남 능력주의와 검찰 출신 연고주의 인사 폐해는 잠복된 불씨다. 언제든 분출할 수 있다. 대통령은 합리적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적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유능한 인재로 채웠다고 고집한다면 민심과 거리는 좁히기 어렵다. 대통령 부인 문제가 국정 현안보다 앞서 화제가 되는 것도 비정상이다.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해 보좌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카자흐스탄과 스리랑카의 분노한 민심은 대통령궁을 불태웠다. 허균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다”고 했다. 이 말을 카자흐스탄 대통령궁 앞에서 실감했다. 분노한 민심이 용산 담장을 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제라도 민심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두려워할 대상은 국민이다. 여론조사에 담긴 지지율을 일희일비하는 변덕으로 치부한다면 희망이 없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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