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찬 전 흥국생명 감독. /KOVO 제공
권순찬 전 흥국생명 감독. /KOVO 제공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도 없었다. 황당한 해명은 분노를 더욱 키웠다. 프로 구단을 운영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된다. 여자배구 흥국생명 얘기다.

흥국생명 구단은 2일 권순찬(47) 전 감독과 김여일 단장을 경질했다. 임형준 구단주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했다"고 밝혔다. 

리그 2위 팀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 소식에 흥국생명 팬들은 물론이고 배구계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구단 수뇌부와 권 전 감독이 선수 기용 문제를 놓고 마찰을 빚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흥국생명의 상식 밖 행보에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구단은 구체적인 감독 경질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 침묵하다 5일 입을 열었다. 신용준 흥국생명 신임 단장은 이날 GS칼텍스와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전임 단장과 감독이 '선수 기용'에 대해서 갈등을 느낀 것은 아니고 '선수단 운영'에 대해 문제가 있던 것으로 안다. 로테이션 문제에서 서로 의견이 안 맞았다”며 "'김연경(35)과 옐레나 므라제노비치(26·등록명 옐레나)를 전위에 같이 두지 말고 전위와 후위에 나눴으면 좋겠다'는 일부 팬의 의견이 있었다. 의견 대립이 많이 되니까 구단주가 동반 사퇴를 시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선수 기용과 전술 운용은 감독 고유 권한이다. 스포츠단 운영 특성상 현장과 프런트 간 의견 대립이 있을 수는 있지만, 배구 전술의 기본인 로테이션에까지 간섭하는 건 명백한 월권이다. 현장의 리더인 감독의 권한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선을 넘어도 너무 많이 넘었다.

신용준 단장은 ‘팬들의 요구를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고 취합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궤변을 늘어놨다. "유튜브에서 해당 부분 얘기가 나왔고, 다른 데서도 팬들이 많이 얘기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흥국생명 구단은 배구 전문가인 코칭스태프의 의견보다 유튜브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더 신뢰한 것이다. 영역별 전문성이 높은 프로 구단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배구인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흥국생명 김연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KOVO 제공
흥국생명 김연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KOVO 제공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흥국생명의 태도에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권 전 감독 경질 뒤 ‘보이콧’까지 고민한 흥국생명 선수들은 작심한 듯 구단을 공개 비판했다. 김연경은 “선수 기용에 대한 얘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며 "경기를 (구단 측이) 원하는 대로 했다가 몇 번 진 경우가 있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신 단장이 "전임 단장과 감독이 '선수 기용'에 대해서 갈등을 느낀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것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김연경은 "이런 일이 다시 안 나왔으면 좋겠고 이런 팀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놀라운 상황이다"라며 "배구인으로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흥국생명 맏언니 김해란(39)도 "(구단의 선수 기용 개입에 관해) 저를 포함해 선수들도 사실 다 알고 있었다. 마음 상한 선수들도 있었고, 저 또한 감독님께 ‘마음이 상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감독님 입장에선 무시 당하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다"며 "안타깝고 이런 일이 다시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인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