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세훈 기자] “지금이 가장 싸다.”

처음 이 문구를 봤을 때를 기억한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에 생필품 구입을 위해 들어갔던 인터넷 쇼핑몰에서다. 오늘 안 사면 내일은 더 오를 것이라는 숨겨진 협박은 최저가를 찾아 헤매는 쇼핑 노마드족(?)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 어마어마한 문구 하나가 기어코 즉시 구매를 클릭하게 하는 요술을 부렸다. 

아니나 다를까. 구입한 물품은 며칠 후 할인 혜택이 사라지고 가격이 두 배가 됐다. 구매 물품에 대한 만족감도 두 배 더 커졌다. 별 다섯 개의 후한 후기를 남긴다. 상술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현명한 소비라며 스스로 위안한다. 

알고 보니 이 문구는 관용구처럼 쓰인다. 쇼핑몰에서, 부동산시장에서 심지어 여러 매체의 단골 기사 제목으로도 쓰임새가 많다.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클릭을 유도하는 등 묘한 구매 욕구를 끌어올린다. 그만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주는 충격이 크다. 흔한 표현으로 월급만 빼고 다 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가 당신이 경험하는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

나사(NASA) 소속 과학자 피터 칼무스(Peter Kalmus)의 경고다. 그는 지난달 SNS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모른다. 올해는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며 “무섭다. 이 끔찍한 더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가능한 한 빨리 화석연료를 끝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요 외신들은 칼무스의 말을 비중있게 다뤘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지난 7월 지구 표면 기온은 역사상 가장 높았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올해 7월 지구 표면 평균 기온은 섭씨 16.95도에 달했다. 해수면 평균 온도 역시 섭씨 20.95도로 가장 높았다. WMO는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변화협약으로 합의한 기온 상승 마지노선인 1.5도에 근접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이라는 기사는 이제 흔하게 쓰일 것이다.  

‘화탕지옥(火湯地獄)’-쇳물이 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의 말은 한 발 더 나갔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탕지옥을 설명하려는 것일까. 그는 지난달 뉴욕 유엔본부에서 “끔찍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라며 “지구온난화 시대는 끝났다. ‘펄펄 끓는 지구(global boiling)’, 열대화시대가 도래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한다. 이보다 더한 표현이 있을까. 전 세계 언론이 들끓었다. ‘펄펄 끓는 지구’ ‘열대화 시대 도래’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탈리아는 올해 극한 폭염에 시달린 시기를 ‘지옥 주간’이라 불렀다.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 시대다. 이 신조어는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최근 영국 BBC에서 소개하며 유명해졌다. 흔히 국제유가가 치솟거나, 전쟁이 발발하거나 등의 요인이 아닌 기후변화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의미다. 우윳값 상승에 따른 밀크플레이션(milkflation)이나 설탕 생산 차질에 따른 슈거플레이션(sugarflation) 역시 기후인플레이션의 하위 범주에 속한다. 기후위기가 인플레이션의 최대 요인이 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여러 세기 동안 경제가 자연 변덕에 덜 민감했다면 이제 날씨가 인플레이션과 성장에 중요하고 예상치 못할 변수로 재등장했다”라고 평가했다. 

올여름은 너무나 잔인했다. 물가는 앞으로 기후변화에 따라 얼마나 출렁일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싸고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데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다. 지구를 되돌리려면 당장 기후 비상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다.”

양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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