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여야, 총선 의식한 '예산 늘리기' 지적
60조원 세수 펑크 우려에도 여야 힘겨루기 한창
31일 국회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마친 뒤 가진 국회 상임위원장단 및 여야 원내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31일 국회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마친 뒤 가진 국회 상임위원장단 및 여야 원내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호진 기자] 국회가 656조 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심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여야는 검찰·경찰·감사원 등 사정기관 예산과 연구개발(R&D) 예산 등 주요 쟁점 항목을 두고 치열한 ‘예산 전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의 ‘표퓰리즘’ 예산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긴축 재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지만, 여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산 늘리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R&D 예산을 비롯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 증액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야당은 5대 분야 40대 중요 증액 사업을 제시하며 정부의 기조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국회는 지난 13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소위원회에서 예산안 심사에 돌입했다. 정부는 지난 8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올해보다 2.8% 증가한 656조 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역대 최저수준이다.

복합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긴축재정 기조를 가져가되, 약자보호, 국민 안전 등 ‘해야 할 일’에 대한 투자는 소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예산안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했다. 8월 29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히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지난달 31일 시정연설 때에는 “모든 재정사업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예산 항목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 지출, 불요불급하거나 부정 지출이 확인된 부분을 꼼꼼하게 찾아내 지출 조정하겠다”고 했다.

특히, 1일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발언에서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보니 쉽지 않다. 결국은 돈이 드는데 예산을 막 늘릴 수 없다”며 “그래서 불요불급한 것을 줄이고 어려운 서민들이 절규하는 분야에 (예산을) 재배치시켜야 하는데, (그동안 정부 지원금을) 받아오던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저항하고 대통령 퇴진 운동을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예산안에 반대하는 이들이) ‘내년 선거 때 보자. 아주 탄핵시킨다’는 이야기까지 막 나온다”면서 “그래서 제가 ‘하려면 하십시오. 그렇지만 여기에는 써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여야는 정부의 입장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R&D·지역사랑상품권·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등 3대 예산을 증액할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심사소위원회에서 R&D 예산을 8000억원께 증액했고, 과학기술계 연구원 운영비·한국과학기술원 등 4대 과기원 학생 인건비 등 약 2조원을 늘렸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 직전 퇴장했다.

또 각 상임위에서 당초 정부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지역사랑상품권 약 7000억원(행정안전위원회) △새만금사업 약 4300억원(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 △사회서비스원보조금 약 133억원(보건복지위원회) 등 총 1조 1435억원의 예산도 부활시켰다.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5대 분야 40대 중요 증액 사업을 제시했는데, △대학생 천원의 아침밥 확대 △명절 반값 여객선 운영 △이·통장 수당 인상 △고령층 무릎·관절 수술 지원 확대 등 현금성 지원 사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여야는 예산안 감액을 두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과 법무부, 감사원 등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등 예산을 최소 5조원 이상 감액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일사 특혜 의혹이 제기된 서울·양평고속도로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여야 간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의석수를 무기 삼은 거대 야당의 폭주가 예산 국회에서도 어김 없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이런 행위는 헌법 57조에 명시된 ‘정부 동의 없이 예산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규정을 무시한 월권이다"라고 질타했다.

예산안 처리는 불투명한 안개 속에 빠졌다.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단독 증액한 예산안이 본회의에서 확정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에 따라 국회는 예산안을 감액만 할 수 있고, 증액하려면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약 60조원 규모의 역대급 '세수 펑크'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여야가 앞다퉈 선거를 의식한 예산 늘리기에만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국이 경색된 만큼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인 12월 2일을 지키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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