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처칠은 유연한 언어로 영국 정치의 품격을 높였다. 의회 출석이 있는 날이면 그는 자주 지각했다. 야당 의원들이 질책을 하자 처칠은 “예쁜 마누라와 같은 침대에서 자봐라. 다음부터 의회 출석 전날은 각방을 쓰겠다”며 넘겼다. 적대적인 상황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을 놓고 에스더 의원과 날카롭게 대립했는데, 에스더가 “내가 만약 당신 아내라면 서슴지 않고 당신이 마실 커피에 독을 타겠다.”고 하자 처칠은 “내가 만약 당신 남편이라면 기꺼이 그 커피를 마시겠다”고 응수했다.

대기업 국유화를 철회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의회가 정회하자 처칠은 화장실에 갔다. 라이벌 노동당 당수 애틀리 옆에 빈자리가 있었지만 그는 기다렸다 다른 자리가 나자 볼일을 봤다. 자신에게 불쾌한 감정이라도 있느냐고 애틀리가 묻자 처칠은 “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를 하려 드는데, 내 것도 국유화하면 큰일”이라고 했다. 애틀리는 폭소를 터뜨렸고, 이후 노동당은 국유화 주장을 철회했다.

이렇듯 정치인의 언어는 날선 상황에서도 상대를 끌어안는 힘이 있다. 그럴 때 정치는 품격을 잃지 않는다. 정치인에게 말은 소통 수단이다. 자신을 선출한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말이고, 상대 정치인과 타협하고 조율하는 것도 말이다. 말은 품격을 잃으면 난잡하다. 자신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를 적으로 돌린다. 성경 잠언은 ‘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생명을 지키지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망하게 된다’며 말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말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간다. 긍정적인 언어는 긍정적으로, 부정적인 언어는 부정적으로 돌아온다.

여의도에 난무하는 경박한 언어는 우리 정치를 희화화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OECD 회원국이 맞나싶다. 천박한 언어는 정치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에게 돌아온다. 왜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더불어민주당 정치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사이에 오가는 설전은 막장 드라마와 같다. 여과 없이 감정을 드러낸 거친 발언들은 이래도 되나싶을 만큼 민망하다. 비속어와 막말은 국격을 떨어뜨리고 진영싸움과 갈등을 부채질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면책특권을 가볍게 사용하는 정치인도 문제지만 한 마디도 지지 않았겠다며 꼬박꼬박 응수하는 국무위원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당 검사범죄대응TF 팀장인 김용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금도를 지키지 못하면 금수다. 한동훈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금수의 입으로 결국 윤 대통령을 물 것”이라고 썼다. 같은 당 유정주 의원 역시 “그닥 어린 넘도 아닌, 정치를 후지게 만드는 너는, 한때는 살짝 신기했고 그다음엔 구토 났고 이젠 그저 ‘#한(동훈)스러워’”라고 적었다. 민형배 의원 또한 “어이없는 ××네. 단언컨대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라고 했다. 앞서 송영길 전 대표는 한 장관 탄핵을 주장하며 “이런 건방진 ×이 어디 있나. 어린 ×이 국회에 와서 (국회의원) 300명, 인생 선배인 사람들을 조롱하고 능멸하고 이런 ×을 그냥 놔둬야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다 우리정치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는지 한심하다. 금수, 어린놈, 건방진 놈, ××라는 낯 뜨거운 비속어가 아무렇지 않게 난무하는 정치상황은 막장이다. 듣다보면 누가 건방진 것인지, 누가 후진 정치를 하는 것인지, 누가 정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도무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품격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천박한 막말을 언제까지 용인해야하는지 의문이다. 처칠처럼 고품격 유머를 구사하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적어도 상식선에서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욕설이나 다름없는 비속어를 내뱉는 순간 자신과 유권자와 국회와 대한민국을 천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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