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LH 임직원,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 토지 약 7000평 사전 매입 의혹
칼 빼든 文 "신규 택지개발 관련 부서 근무자·가족 등 전수조사할 것"
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입구로 사람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김준희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 10여 명이 광명·시흥지구가 3기 신도시로 지정되기 전 미리 토지를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LH가 조사 범위를 3기 신도시 전체로 확대한 가운데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의혹에 대해 빈틈없는 전수조사와 엄중한 대응을 지시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 10여 명이 지난달 24일 발표된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 토지 약 7000평(2만3000여㎡)을 사전에 매입한 의혹을 발표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LH 임직원과 배우자 등 10여 명은 2018년 4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총 10개 필지를 약 100억원에 구입했다. 이 중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금만 약 58억원에 달했다. 이들은 해당 토지들을 개별적으로 소유권을 취득하기보다는 공동으로 소유권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시흥시 소재 토지의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LH 직원 명단 등을 대조해본 결과 상당수가 LH에서 보상업무를 취급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시기에 2개 필지를 매입한 경우도 있었으며 배우자 명의로 함께 취득하거나 퇴직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공동으로 취득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참여연대는 “이는 제보를 받아 일부 필지 자료만 특정해 찾아본 결과로 광명·시흥 신도시 전체로 확대해 배우자나 친인척 명의로 취득한 경우까지 조사하면 사례가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의혹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땅투기 의혹을 받는 LH공사 직원의 명단과 토지 위치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사용자들은 “이러니 정책이 백약무효한 것 아니냐”, “투기꾼과 전쟁한다더니 정작 적은 내부에 있었다”,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꼴” 등의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도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욕하던 투기세력이 LH였던 것 아니냐”, “관련자는 징계하고 신도시 지정도 취소해야 한다”, “발표 직전 땅에 묘목까지 심을 정도면 상당히 치밀한 것 같다”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특히 이들이 땅을 사들인 시기가 변창흠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임했던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변 장관은 지난 2019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LH 사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만약 사전 투기 의혹이 사실이라면 관리·감독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 장관은 의혹이 제기된 2일 국토부 산하 기관장들과 신년회 자리에서 “광명·시흥지구에서 LH 임직원들이 사전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사실관계를 떠나 기관장이 경각심을 갖고 청렴한 조직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때”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변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자 여론은 ‘유체이탈 화법'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야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위원들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3년 동안 지분까지 나누고 은행에 수십억 대출까지 받아가며 토지를 매입한 이들의 행태는 범죄일 뿐 아니라 파렴치한 국민 기만이고 국기문란 행위”라며 “(변창흠 장관은) 직원들이 국민을 농락하는 희대의 투기를 벌이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질타했다.

홍경희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도 “정부는 즉각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과거 모든 신도시 개발과정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며 “범죄로 판명되면 변 장관도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LH 등이 신도시 정보 유출 등 비리 논란에 휩싸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고양 창릉 신도시를 지정하기 전인 2018년엔 LH 내부에서 검토한 도면이 유출되기도 했다. 당시 LH는 "고양 창릉은 신도시로 지정할 계획이 없다"고 발뺌했지만 결국 1년 뒤 3기 신도시로 선정했다.

또 지난 2019년에는 일부 직원이 LH 아파트 15채를 순번추첨 수의계약, 추첨제 분양 등의 방법으로 받아 본인과 가족 명의로 소유하고도 직원 의무 사항인 신고 절차를 밟지 않아 '견책' 징계를 받는 일도 있었다.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개발정보를 미리 파악안 직원이 본인 아닌 지인 명의로 구입 후 수익을 나눈다는 글도 등장한 만큼 강력한 감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상황이 심각해지자 결국 대통령이 칼을 빼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광명·시흥은 물론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국토부, LH, 관계 공공기관 등에 신규 택지개발 관련 부서 근무자 및 가족 등에 대한 토지거래 전수조사를 빈틈없이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전수조사는 총리실이 지휘하되 국토부와 합동으로 충분한 인력을 투입해 한점 의혹도 남지 않게 강도 높게 하라”며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수사 의뢰 등 엄중 대응하고 신규 택지개발 관련 투기 의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이번 사전 투기 의혹이 정부의 공급대책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기미가 보이자 대통령이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새다. 

한편 국토부와 LH는 광명·시흥 외에 다른 3기 신도시에서도 LH 직원의 땅 투기가 있는지 전수조사에 착수하고 조사 대상을 국토부 직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경찰 또한 이번 의혹에 대해 고발장을 접수하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김준희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