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장.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장.

전쟁이란 인간의 실존과 숙명적인 관계다. 전쟁은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현상이다. 인류는 피할 수 없는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핵무기 사용의 전쟁위협이 대두되면서 기후위기와 더불어 인류의 존재적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글로벌 조류에 따라 순항하던 ESG가 풍랑을 맞고 있다. 개전 4개월로 넘어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자원의 갈등과 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로 그 동안 ESG에 집중되던 투자흐름이 최근 들어 종전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모양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ESG 펀드에의 신규 투자자금 유입이 감소하고, 오히려 대규모로 자금유출이 일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그동안 투자금지 또는 기피 분야로 취급받아 온 방위산업이나 석유, 가스 등 에너지산업의 주가는 크게 상승한 반면, 환경 친화적 산업의 주가는 하락하기 때문이다. 블랙록과 뱅가드 등 세계적 주요 자산운용사들도 한발 물러서 화석연료산업에 대한 투자를 허용하는 등 지금까지의 투자원칙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는 분위기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주주 총회 안건으로 올라오는 정책 상당수가 경영진을 구속하고 지나치게 규범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블랙록이 2020년 연례 서한에서 “ESG 경영에 소홀한 기업은 주주 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거나 주주개입 활동을 벌이겠다.”는 기존 입장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ESG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ESG가 후퇴한다는 판단은 너무 섣부르다. 오히려 그 동안 줄곧 환경에 방점을 두고 진행됐던 ESG가 사회적·경제적 성과와의 균형적인 전체성(Triple Bottom Line)을 모색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해석되어진다.   

이러한 흐름에는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병목과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세계는 석탄과 석유로 신속히 회귀해 화석연료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을 확대했고, 안보 불안감도 높아져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수요가 집중한데에 따른 상황적 적응성이 작용했다고 본다. 더구나 치솟는 유가와 무기구매 급증으로 수익률이 크게 상승한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 포트폴리오의 상향 조정은 시장수익률을 적극 고려해야하는 수탁자 의무(Fiduciary duty)의 발로이기도 하다.  

UN PRI(책임투자원칙)에 기반 한 GSIA(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의 ESG투자유형은 7가지로 나뉜다. 네거티브 스크리닝, 포지티브 스크리닝, 규범기반 스크리닝, ESG 통합투자, 지속가능성 테마투자, 임팩트 투자 그리고 기업관여 방식 등이다. 모두가 ESG의 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산업, 기업 및 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가 원칙이다. 하지만, 적정수익의 충족이라는 전제조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거대한 사회적 현상(S)이다 

여기에서 최근의 상황과 동향을 냉철히 드려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했는데도 방위 산업과 화석연료 기업을 ESG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이냐는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또한 전쟁으로 전 세계 물가가 급등하고 경기불황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인해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상당기간 회복력(Resilience)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환경적 성과를 잠시 유예시키는 우선적 선택에 대한 타당성과 정당성에 대해서도 ESG의 통합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논의해야할 사안이다. 물론 ESG가 태동하게 된 문제의식이 달라지거나 해결의지가 사라지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전쟁의 사회적 영향은 잔인함과 비참함으로 인간의 삶을 암울하게 만든다. 따라서 전쟁으로 야기되는 지구적·인류적 고통 및 불행을 뒤로하고 환경에만 경도된 대응은 ESG의 근간되는 지속가능성 차원에서도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전쟁이 끼친 무수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상황적 선택이라면, 일시적인 환경의 희생만을 크게 부각해 비난할 대상은 아닌 듯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SG의 사회적 수용성과 확장성 높여 개념적 모호성 극복해야  

사실 ESG 개념에 대한 모호성(Ambiguity)으로 ESG의 본질에 대한 불완전성이 존재해 왔다. 특히 경제적 성과와 환경적, 사회적 성과가 과연 조화롭게 추구될 수 있는 명제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 해답은 ESG와 연계되어 인간, 지구, 번영에 더해 평화, 파트너십을 미래의 인류목표로 삼고 있는 UN SDGs(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찾을 수 있다. 미래세대를 포함해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자원의 훼손 없이 지속가능한 인류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전쟁 갈등을 해소하는 경제적 활동의 영향(Impact)이 ESG의 근본적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다면 ESG 통합관리 측면에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대세론에 힘이 실려 급격히 확산되던 ESG경영에 역주행을 우려하는 소리가 적지 않지만, 전쟁과 같은 현안에 대응하는 실천적 유연성의 확보를 통해서 큰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 글로벌 규범화와 법제화로 ESG 2.0의 주도적 역할이 투자자로부터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기업 경영으로 바뀌면서 ESG의 불가역성이 더욱 강화되어 이를 뒷받침하게 될 것이다.  

결국 전쟁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거대한 사회적 위험이다. ESG 관점에서 해결할 과제인 것이다. 따라서 전쟁으로 얽힌 난제를 풀어나갈 해법을 찾기 위해 ESG의 사회적 수용성과 확장성을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모을 때이다. 이번 역풍의 위기가 ESG 경영이 연착륙을 위해 한 단계 성숙해지는 반전의 기회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