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북에서 출발한 무인기 5대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달 26일 우리 영공을 침입한 무인기 파문은 해를 넘겨 증폭되고 있다. 무인기는 현 정권과 전 정권 사이 책임 공방을 불렀다. 또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대립을 격화시켰다. 나아가 군 기강 해이와 문책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9.19 군사합의 합의 파기를 검토하는 등 남북관계는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1차적 책임은 정부여당에게 있지만 야당 또한 정치적 목적에서 증폭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과야 어찌됐든 북한 당국은 남남갈등을 촉발함으로써 무인기 작전을 성공리 수행한 셈이 됐다.

무인기 침범으로 떠들썩한 지난달 27일 장성급 군관계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무인기 탐지와 요격은 홀인원보다 어렵다”며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 탐지를 실패한 이유다. 무인기 동체 길이는 2m에 불과해 레이더 탐지가 쉽지 않다. 레이더 원리는 전자파를 발사해 반사되는 전파를 이용해 물체를 식별한다. 그런데 지금 군사기술 수준으로는 어려울 뿐더러 이따금 새 떼를 비행물체로 오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군은 지난달 27‧28일 정체불명 항적이 레이더에 포착됐다며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알고 보니 새 떼와 풍선이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무인기 파장 이후 과민하게 대응한 결과였다.

둘째 요격을 못한(어려운) 이유다. 탐지가 안 되니 애초부터 타격은 어렵다. 또 탐지했다 해도 도심 상공에서 요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민간인 피해가 빤한 상황에서 무인기를 잡자고 무턱대고 요격하기란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어렵다. 사건 발생 직후라서, 또는 군 입장에서 옹호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감안하더라도 적지 않게 공감됐다. 물론 이런 해명이 모든 의문을 일소시키지는 않는다. 나아가 사정을 이해하더라도 책임이 덜해지는 것도 아니다. 원론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국가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직결된 만큼 지나치지 않다. 군은 어떤 경우라도 국가안보 최전선에 있다.

문제는 무인기 침범 이후 군 당국이 보여준 어설픈 대응에 있다. 5일 군은 “무인기 1대가 비행금지구역(P-73) 끝을 스치듯 지나간 항적을 뒤늦게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P-73은 대통령실과 국방부를 중심으로 반경 3.7㎞에 달하는 구역이다. 앞서 합참은 P-73 침범 주장과 관련, “근거 없는 이야기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부인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번복했다. 더구나 검열 과정에서 P-73 침범 사실을 알았다며 일선 부대에 책임을 떠넘겼다. 또 “대통령실 촬영은 불가능하다. 구글 이상 유의미한 정보는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은 “대통령실을 촬영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군 당국의 어설픈 발표와 후속 대응은 안보 불을 야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군 장성 말대로라면 국민들에게 정확한 실상을 알리고 후속 조치를 수립해야 한다. 그런 뒤라야 ‘합동드론사령부’ 창설도 동력을 받는다. “구글 이상 유의미한 정보는 얻을 수 없다”는 자기위안은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합참 공보실장은 “1955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300m 부근까지 접근했다. 청와대가 뚫린 건 아니지만 위협받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담당기관, 부서와 협의해보겠다”고 했다. 이런 질문조차 소신껏 답하지 못하는 군이라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침투 상황을 설명하면서 50년 전 지도를 꺼낸 해프닝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군은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5일이면 북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돌아가 안보 불안감이 증폭하던 때다. 그런 비상 상황에서 단순 실수를 거듭한다면 기강 해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 군사기술 수준으로 무인기 탐지와 요격은 어렵고, 대통령실 촬영 가능성은 국정원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또 오래 전 지도를 내놓는 군이라면 심각한 상황이다. 이제라도 외양간이라도 고치려면 철저한 상황 파악과 솔직한 대처가 관건이다. 전 정부를 탓하고 북과 내통을 주장하는 건 무능하다.

“9·19 군사 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 또한 현명한 대응은 아니다. 9.19 군사 합의는 남북이 육상과 해상, 공중에서 모든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록 잇단 도발 때문에 위기를 맞았지만 한반도 평화 진전을 위해 필요한 합의다. 아마 북한 당국은 합의 파기를 유도하며, 무인기 5대로 좌충우돌하는 우리사회를 보면서 웃고 있을지 모른다. 북한 술수에 흔들린다면 하수(下手)다. 군은 야당이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말해야 한다. 야당을 의식해 말꼬리를 잡힐까 에두르지 말고 쉬운 언어로 말하는 게 중요하다. 야당 또한 책임 있는 자세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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