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보드 타고 허공에 떠 있을 때가 가장 행복"
이나윤, 올림픽 이후 새로운 목표 향해 전진
"스노보드는 제 인생… 여자 주니어 선수 지도는 꿈"
이나윤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가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한국스포츠경제 강상헌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2023.02.22.
이나윤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가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한국스포츠경제 강상헌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2023.02.22.

[한스경제=강상헌 기자] 악보를 보면 ‘D.C. al Fine(Da capo al fine·다카포 알 피네)’라는 음악 기호가 있다. 다카포는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알 피네는 ‘이 사인이 있는 곳에서 곡을 끝내라’는 뜻을 지녔다. 즉 다카포 알 피네를 정리하면, ‘악보의 처음으로 돌아 가 연주하고 피네(마침표)에서 끝내라’는 의미다.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나윤(20·경기도스키협회)은 5살 때 처음 동계스포츠를 경험했다. 이후 쇼트트랙을 거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스노보드 종목으로 전향했다. 스노보드와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이후 대한스키협회의 체육 영재로 선발됐다. 스노보드 유망주로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자신의 꿈이었던 올림픽 진출을 이뤄냈다. 이제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나윤은 지난해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나윤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이파이브 출전 모습. /이나윤 제공
이나윤은 11일(한국 시각)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22-2023 FIS 스노보드 월드컵 여자 하프파이브에서 6위에 올랐다. 지난해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나윤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이파이브 출전 모습. /이나윤 제공

◆ 스노보드는 내 인생

22일 서울시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난 이나윤은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좌우명을 음악 기호 ‘다카포 알 피네’에 빗대 이야기했다. “‘인생은 악보와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악보의 음악 기호 ‘다카포 알 피네’처럼 말이다”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클라이맥스로 삼으려 한다.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릴 것이다. 연주를 하는 것처럼 스노보드 선수 커리어의 최종장을 다음 동계올림픽에서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스노보드는 눈 위에서 사용하는 보드를 활용해 속도와 기술을 겨루는 종목이다. 기록 경기인 알파인과 크로스, 기술 중심의 하프파이프와 슬로프스타일, 빅에어까지 5개 세부 종목으로 나뉜다. 이나윤의 주 종목인 하프파이프는 스노보드 기술 부문의 간판이다. 선수들은 원통을 절반으로 자른 모양(하프파이프)의 슬로프에서 고공 점프와 공중회전 등 고난도 연기를 펼친다.

5개 세부 종목 중 하프파이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나윤은 “퍼포먼스 종목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 하프파이프는 스스로 속도를 낸 만큼 높이를 띄울 수 있다. 그 점에서 매력을 느꼈고 저랑 잘 맞았다”며 “처음 기술을 시도할 때는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허공에 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보드를 타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안 되던 기술을 성공하면 희열도 느껴진다. 보드가 인생에서 빠지면 아주 허전할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이나윤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가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한국스포츠경제 강상헌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2023.02.22.
이나윤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가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한국스포츠경제 강상헌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2023.02.22.

◆ 코리안 좀비

보드와 함께한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픈 기억도 많다. 2021년 10월 스위스에서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수술과 재활을 고민했다. 그러나 4개월 남은 올림픽에 대한 열망으로 버텨냈다. 당시를 회상한 이나윤은 “병원에서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눈물이 났다. 2021년 초에도 같은 쪽 무릎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슬펐다”며 “이후에 마음을 다잡았다. ‘파이프 위에 올라갈 수 있는 몸 상태까지만 만들자’는 심정이었다. 그 당시에는 하프파이프 종목에 참가 선수가 저뿐이었다. 제가 빠지면 참가 선수가 아무도 없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큰 성적을 못 내더라도 올림픽에 나갈 수만 있게 하자’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손목, 발목 골절을 시작으로 양쪽 쇄골, 무릎, 허리 등 성한 곳이 한 곳도 없다. 하지만 포기란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같은 종목의 선수들은 ‘코리안 좀비’라고 부른다. 큰 부상을 당한 뒤에도 곧바로 씩씩하게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코리안 좀비라는 별명에 대해 이나윤은 “여자 선수가 큰 부상을 당한 이후에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무릎 부상을 당했을 때만 하더라도 몇몇 분들은 ‘다시 돌아오기 힘들 거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들었다”며 “주변 분들의 도움이 컸다. 부모님과 코치님,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괜찮다 할 수 있다’고 많이 말씀해 주셨다. 그 덕분에 부상을 당한 뒤 힘들 때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예선 20위를 기록한 이나윤의 시선은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예선 20위를 기록한 이나윤의 시선은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 새로운 목표와 꿈

이나윤은 17일 펼쳐진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여자일반부 결선에서 94.00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이 기세를 몰아 세계 무대에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는 “지난 월드컵에서는 파이널 무대에 올랐다. 이제는 포디움에 올라서 보고 싶다. 지속해 세계 대회에서 결선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최종적으로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부모님께 감사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10대 때 부상이 많았다.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제대로 성적을 낸 적이 없다. 속을 많이 썩였다. 이제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올해 대학 입학에 성공했다. 경희대 23학번 새내기가 됐다. 스포츠지도학과를 선택했다. 꿈과 연관이 있다. 이나윤은 “‘다카포 알 피네’처럼 선수 생활을 잘 마친 뒤에는 어린 선수들을 키우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 특히 어린 여자 선수들을 지도해 보고 싶다”며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종목에는 여자 주니어 선수들을 지도하는 여자 코치가 없다. 저도 어렸을 때 그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여자 코치들이 따로 없어서 고민이 생겼을 때 털어놓기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제가 부족한 그 부분을 채워주고 싶다.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제 바람이다”고 미소 지었다.

강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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