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대통령실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 주제로 국민참여 토론 진행
국민의힘, 지난달 말 집시법 개정 추진…야간집회 금지·소음 기준 강화
최근 5년간 매년 8만건 이상 집회 개최…하루 221건꼴
2021년 초부터 열 달간 집회 소음 관련 112민원 2만건 넘어
집시법 장소 제한 조항…어린이집·유치원 주변에서는 무용지물

집회·시위 요건과 제재 방안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당이 지난달 심야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집시법’ 개정 추진을 밝혀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야당과 노동·시민단체 등은 집회 자유를 박탈하려는 행보라며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팽팽한 신경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양측이 근거로 내세운 ‘시민 기본권’과 ‘집회의 자유’라는 문제는 단기간에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은 심야 시간 집회 문제로 촉발됐지만 현행법이 완벽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집회 소음 기준과 장소 제한 등 현행법 규정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게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일부 집회·시위로 불편을 호소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에 한스경제는 최근 집시법 개정 추진 배경과 사각지대로 발생하는 피해,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지난달 16일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건설노조 모습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건설노조 모습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수 기자]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린 민노총(민주노총)의 집회 행태는 국민들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집회의 자유마저 박탈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명백한 위헌적 발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부와 여당, 야당이 집회 요건과 제재를 두고 엇갈린 시각을 보인다. 정부·국민의힘은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앞세워 일정 부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집회의 자유를 박탈하는 처사라고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는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집회·시위에 대한 규제 강화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최근 대통령실이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라는 주제로 국민참여 토론을 진행하며 여론 수렴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발제문에서 “우리 헌법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집회·시위 자유가 지속해서 확대되어 왔지만 최근 시민과 사회가 감내해야 하는 불편이 지나치게 커 적정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토론 이유를 밝혔다.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현행법을 적절히 손질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와 여당이 집회·시위 규제에 눈을 돌린 배경은 지난달 16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박2일 ‘노숙집회’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초 노조는 1박2일 노숙 시위를 신고한 반면, 경찰은 이를 허용하지 않은 채 오후 5시까지만 집회를 허락했다. 하지만 노조는 이후에도 집회를 계속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與, 집시법 개정 입법 추진…야간집회 금지·소음 기준 강화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지난달 22일과 24일 각각 열린 최고위원회의와 당정협의회를 통해 ‘오전 0시~6시 옥외집회 금지’하는 방향으로 한 입법 추진을 밝혔다. 아울러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가 집회·시위 개최 계획을 신고할 경우 이를 허가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전했다. 집회·시위로 인한 소음 관련 규제도 강화할 방침이다. 확성기 사용 등 제한 통고에 대한 실효성을 확보하고 소음 기준을 강화해 타인의 법익 침해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강력히 규탄했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서 명시한 국민의 기본권이자 대한민국을 이뤄낸 근간이라는 이유를 들며 집회·시위 통제로 국민의 입까지 틀어막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두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현행법의 한계로 방치됐던 다양한 사회문제도 눈길을 끈다. 집회 소음 규제와 시간·장소 등 사각지대가 생기며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청의 ‘신고 집회 및 미신고 집회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마다 8만건(미신고 집회 포함)이 넘는 집회가 개최됐다. 매일 221건의 집회가 우리 주변에서 이뤄진 셈이다. 2018년 6만8315건이었던 집회 개최 건수는 이듬해 9만5266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020년에는 7만7453건으로 줄었지만 2021년 8만6552건, 2022년 7만6175건의 집회가 개최됐다.

미신고 집회 개최 건수도 늘었다. 2018년 53건에 불과했던 미신고 집회 개최 건수는 2019년 11건으로 줄었지만 이듬해 27건으로 소폭 증가했다. 이후 2020년 27건, 2021년 204건으로 크게 늘어났고 2022년에는 144건의 미신고 집회가 개최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개년 집회 개최 현황. /경찰청
최근 5개년 집회 개최 현황. /경찰청

◆ 2021년 초부터 열 달간 집회 소음 관련 112민원 2만건 넘어

그렇다면 시민들이 가장 불편을 겪고 있는 집회 소음은 어떨까. 경찰은 집시법에 따라 집회 소음이 기준을 초과하면 기준 이하로 유지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만약 상황이 계속될 경우 확성기 등의 사용 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그래도 기준치 이상일 경우 확성기 등의 일시보관 같은 조치를 할 수 있다.

경찰청 ‘집회·시위 소음측정 현황’에 따르면 2022년 총 5만5091건 집회 소음 측정 결과 중 유지·중지 명령을 내린 사례는 2672건이다. 소음 측정으로 분리조치까지 간 경우는 1건에 불과했다. 2021년의 경우 총 4만9557건 중 1566건에 대해 유지·중지 명령을 내렸고 분리조치는 3건이었다. 2020년의 경우 총 1만9544건 중 유지·명령 1267건, 분리조치 1건 등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시민들이 집회 소음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1년(10월까지) 집회 소음 관련 112 민원 건수는 2만2854건에 달했다. 월평균 2000여건에 이르는 셈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집회 소음 측정 방법 때문이다. 집시법 시행령에 따르면 경찰은 확성기 등의 소음을 측정할 때 ‘등가소음’과 ‘최고소음’을 측정한다. 등가소음은 10분간 평균 소음을 말하며 최고소음은 1시간에 3회 이상 소음 기준을 초과한 경우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다.

주간 시간대 주거지역과 학교, 종합병원, 학교 등의 등가소음과 최고소음 기준은 각각 65dB(데시벨) 이하, 85dB 이하다. 만약 확성기 등을 5분간 등가소음 기준치 이상으로 틀었다가 이후 크게 줄이면 10분 평균값이 기준 이하로 나올 수도 있다. 아울러 최고소음 역시 기준치보다 2회가 커도 1회만 낮으면 회피할 수 있다. 즉 현행법상 소음 측정 방법에 맹점이 존재하는 셈이다.

최근 3개년 집회·시위 소음 측정 현황. /경찰청
최근 3개년 집회·시위 소음 측정 현황. /경찰청

◆ 초·중·고보다 3배 많은 어린이집·유치원…집회 피해 고스란히 노출

집회 제한 장소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현행 집시법에는 집회·시위 장소가 ‘초·중등교육법’ 2조에 따른 학교 주변 지역일 경우 집회나 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주변 지역에 대해서는 이러한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초·중·고등학교는 1만1794개소인 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이보다 3배가량 많은 3만9485개소에 달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역시 영유아한테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습권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법의 사각지대 때문에 집회·시위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상황이다.

일부 시민들은 최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1박2일 노숙집회로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는 인정하나 이에 따라 발생하는 교통체증 같은 문제가 심각했다는 얘기다.

직장인 A씨는 “평소 회사 주변에서 집회가 열리면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소음 때문에 불편을 겪기도 한다”며 “최근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서 퇴근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광화문 일대를 지나는 광역버스들이 제시간에 빠져나지 못해 5대가 정체되는 일도 벌어져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동료들의 불만이 쏟아졌다”며 “광역버스의 경우 입석도 안 되는데 제시간에 운영조차 되지 않아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덧붙였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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