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우리나라 지급결제 인프라 발달, 당장 도입 필요성은 시급하지 않아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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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박종훈 기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에 대한 연구와 실험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이미 시범 도입해 운영하는 나라도 있다.

가까운 미래 CBDC를 중심으로 디지털 지급결제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란 예상은 이제 자명해졌다. 비록 우리나라처럼 지급결제 인프라가 잘 정비돼 있어 당장 도입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위한 준비는 계속돼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86개 중앙은행 중 93%가 CBDC 관련 연구·개발 및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 2021년부터 다각적인 연구와 실험을 진행해 왔다. 지난 10월에는 금융기관 간 자금거래 및 최종 결제 등에 활용되는 기관용(wholesale) CBDC를 중심으로 한 활용성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CBDC는 그 성격을 기관용(도매용)과 범용(소매용, retail/general-purpose)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둘의 차이는 향후 CBDC가 주로 누구에 의해서, 어디에 쓰일지를 염두에 두면 구분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CBDC는 미래의 디지털 법정화폐로 볼 수 있으며, 향후 디지털 지급결제 시스템의 핵심적 준거(anchor) 역할을 할 것이란 게 한국금융연구원 이명활 선임연구위원의 정의다.

CBDC를 토대로 발행되는 토큰화된 예금(tokenized deposit), 즉 예금토큰이나 스테이블코인이 일상에서 쓰이는 디지털 화폐나 디지털 지급결제수단의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하면 디지털 이중 통화 시스템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서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화나 원화 등의 기성 화폐를 고정가치로 두고 이에 연동해 발행하는 가상자산을 가리킨다.

우선 기관용 CBDC가 발행돼 활용된다면, 가령 은행간의 거래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익일 차액결제 시스템이 실시간 총액 청산·결제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의 ‘화폐’가 쓰이기 때문에 갖는 이점이다.

나아가 은행만이 아니라 여타 금융기관에서도 기관용 CBDC 활용이 확대돼 실시간 결제 시스템이 허용된다면, 가령 증권과 같은 다양한 자산 거래가 즉시 결제로 완결되는 이점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편의성이 대폭 커지는 것이다.

물론 CBDC의 본격적 도입 이전에도 은행에서 발행된 예금토큰이 상거래나 송금 등에서 쓰이며 유통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거래는 지금과 같은 익일 차액결제 시스템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CBDC 도입이 이뤄진다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디지털 화폐 중심 플랫폼이 구성될 것이며, 소액결제 등까지 포함한 지급결제 시스템 전반이 실시간 통합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범용 CBDC란 여기서 더 나아가 일상 거래 부문까지 기성 실물 통화를 완전히 대체하는 개념을 가리킨다. 기관용 CBDC 도입과 관련된 논의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급결제 시스템의 혁신과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주로 언급되는 것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 범용 CBDC는 ‘현금 없는 경제’를 준비하는 측면에서 주로 언급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와 같이 다양한 지급결제 인프라가 잘 발달돼 있고 널리 쓰이는 국가에선 현금 사용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현금 없는 경제, 혹은 현금 사용이 불편한 경제가 도래한다면 민간 경제주체 중에선 지금까지 중앙은행이 발행해 온 실물 명목화폐를 사용하거나 보유하기에 불편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범용 CBDC의 도입과 발행은 이와 같은 상황의 대비책이다. 현금 없는 경제가 오더라도 개인 누구나 계속해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가 범용 CBDC 도입과 관련한 핵심 논의이다. 다시 말해 이는 금융포용과 형평성 측면에서 이슈라고 하겠다.

아울러 이와 같은 기술은 금융이나 지급결제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후발국들에서훨씬 유용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실물 화폐 중심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거쳐,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를 중심으로 한 지급결제까지 다양한 문화가 혼재돼 발달한 데 반해, 카드 결제 문화를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 지급결제 문화가 확산된 국가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사례다.

이명활 선임연구위원은 “기관용 CBDC는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정성 및 효율성을 제고하는 한편, 향후 국경간의 거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혁신적인 차세대 디지털 지급결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설계 및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범용 CBDC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급결제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어 도입이 시급하지는 않으나, 향후 현금 없는 경제 도래 시 중앙은행 발행 법정 디지털화폐 보유권을 일반 민간 경제주체들에게 부여할지 차원에서 도입 여부 결정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지난 11월 23일 ‘CBDC 활용성 테스트’ 세부 추진 계획을 마련해 발표한 바 있다. 크게 실거래 테스트와 가상환경에서의 기술 실험으로 구분해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실거래 테스트는 2024년 4분기 중 착수될 예정이다. 그 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피자면, ① 발행 의뢰기관의 의뢰로 은행이 디지털 바우처 기능이 부여된 예금토큰을 발행하고(발행) ②이용자가 이를 이용해 사용처에서 물품 등을 구매한 후(유통) ③사용처 앞 대금이 지급되는 단계(지급)로 구성된다.

현재 정부나 기업 등은 보조금·상품권·이용권 등의 다양한 목적과 형태, 사용처를 가진 바우처를 발행해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통화의 가장 큰 특징인 프로그래밍 기능을 활용한다면 CBDC 기반 예금토큰 등에 적용되는 디지털 바우처는 지금과 같은 높은 수수료, 복잡하고 느린 정산 프로세스, 사후 검증 방식의 한계, 부정수급 우려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이 높다. 

종국엔 본격적인 CBDC 도입 이후 명목화폐까지 대체할 수 있을지의 여부와 그 효과 등을 디지털 바우처에 대한 실험으로 가늠해 보는 과정이다. 이에 한국은행의 테스트에 국제적 관심도 높은 상황이다.

아울러 가상환경에서의 기술 실험은 실거래 테스트와 별개로 탄소배출권 등, 새로운 형태의 금융상품의 발행과 유통 과정 등을 가상으로 구현해 진행하는 실험이다.

본격적인 실거래 테스트에 들어가기 전에 참가 은행은 금융규제 샌드박스 등의 관련 절차를 거쳐 내년 3분기 말 이전 확정될 예정이다. 가상환경에서의 기술 실험 같은 경우 희망하는 모든 은행이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실거래 테스트의 경우 은행 참여자 외에도 일반 이용자 역시 내년 9월과 10월 사이 참여 신청을 접수할 예정이다. 참여자 수는 최대 10만명 이내로 제한할 계획이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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