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전통 자산과 디지털 자산 연결 역할...향후 다양한 신금융 서비스 촉발 계기될 것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실험은 최근 수년 사이에 급진전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이 CBDC 도입을 검토 중에 있으며, 특히 이웃나라 중국은 적극적인 상용화 실험을 밟고 있다.

구체적으로 실용될 때의 모습은 다를 수 있겠지만, 통상 현재는 은행 간의 거래에 쓰이는 도매용 CBDC와 개인을 비롯한 민간 경제주체들이 사용하는 소매용 CBDC 등, 이원적 시스템을 갖는 게 일반적인 구분이다.

향후 전통적 화폐와 연결 고리를 가지며 점차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CBDC의 효용과 기대효과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우선 결제 과정 등의 단순화로 인해 수수료 등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또한 지급 투명성 제고나 전통 화폐와 디지털 자산 연계 과정에서 다양한 금융 혁신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역설적이게도 CBDC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검증 실험과 도입 추진이 급물살을 타게된 것은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됐다. 특히 테라/루나 사태가 보여주는 것처럼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통화 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인식을고조시켰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법적으로 기존 화폐와 동일한 지위를 갖고 있는 CBDC가 스테이블코인 통제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는 의미심장하다. 결국 기존 통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연결과 프로그래밍 기술 활용 등의 디지털 자산의 장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 CBDC가 가진 가능성이다.

2021년 4월 기준으로 보면 CBDC 실증 사업과 발행을 추진하는 국가는 33개국이었다. 그런데 2023년 6월엔 66개국으로 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입을 검토하는 나라는 같은 시기 101개국에 달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CBDC를 미래 핵심 금융 인프라로 여기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에게 채권 등, 다양한 자산의 토큰화 실험과 관련 법제화 추진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BIS 사무총장 아구스틴 카스텐스는 한국은행과 ‘CBDC와 미래 통화 시스템’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우리 CBDC 활용성 테스트에 대해 “미래 통화 시스템의 비전에 다가서기 위한 의미 있는 프로젝트이다"고 했다.

또한 "특히 설계구조와 같은 기술적 측면 뿐만 아니라, 통화·금융 당국과 민간부문 사이 긴밀한 협력으로 추진되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BIS는 2030년까지 24개국이 CBDC 발행을 완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예바 역시 CBDC가 기존 현금의 대안이 될 것이며, 각국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CBDC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신석영 수석연구원이 정리한 ‘CBDC 도입과 일상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CBDC 상용화 추진이 가장 앞서 가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2029년 본원통화 중 15% 이상을 디지털 위안화(e-CNY)로 발행하고, 국경간의 결제에서도 활용할 계획이다.

중국은 주요 도시에 e-CNY를 보급하고 태국·UAE·홍콩 중앙은행과 국경간의 결제 실험인 m-CBDC를 수행하기도 했다. 최근엔 스탠다드차타드와 e-CNY 신규 사업도 착수했다.

중국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지난 2019년 이래 e-CNY의 역내 보급을 적극 추진 중에 있다. 특히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확산이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베이징을 비롯한 17개 주요 도시에서 보급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누적 거래액은 875억위안, 한한로 약 16조 4000억원에 달한다. 전자지갑 발행은 1000만개를 돌파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 정부는 스탠다드 차타드BNP 파리바와 함께 2023년 11월 e-CNY 환전·국경간 결제·무역공급망 서비스 추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중국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2029년 본원통화 대비 발행액 15% 목표는 이용자 10억명, 발행액 1조 5000억위안(약 276조 5000억원) 규모다.

또한 지난 2022년에는 국경간의 결제 타당성을 검토하는 m-CBDC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중국·홍콩·태국·UAE 등, 4개 중앙은행과 BIS, 20여 개 글로벌 금융사가 공동으로 대규모 CBDC 국경간 결제 테스트를 추진한 것이다. 총 5748억달러 규모의 국경간의 결제가 이뤄졌으며, 상품결제·공급망 금융·금융서비스 개발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테스트가 진행됐다.

이 같은 실험은 CBDC의 핵심 기술인 스마트계약과 분상원장기술을 활용해 스위프트(SWIFT) 대체 가능성에 대한 검토도 이뤄진 셈이다. 국제은행간 통신협회인 스위프트는 현재 국경간의 결제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CBDC 기반 국경간 결제는 스위프트 방식에 비해 거래비용 측면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게 실험에서 드러났다. 가령 스위프트에서 은행간 동시 결제는 브릿지 개념인 CLS 은행이 필요하다. 그러나 은행 영업시간이 상이한 대륙간 결제의 경우, 동시 결제 가능시간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CBDC 스마트계약은 블록체인에 등록된 모든 외화를 24시간, 365일 국경간 결제로 이용할 수 있다. 미 달러화 등 제3자 통화 없이 결제되는 점 역시 비용 절감 효과로 기능한다.

또한 다른 이웃나라인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초기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와의 차별점은 MUFG이나 미즈호 등, 주요 금융사들이 합작사 프로그마트를 출범하고 CBDC와 토큰증권(ST) 등의 디지털 자산 발행·유통·상품 개발 등 생태계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프로그마트는 ST를 중심으로 디지털 자산 발행은 본격화하고 있으며 지난해 하반기까지 누적 800억엔 규모를 발행했다. 오사카 디지털거래소(ODX)와 연계도 본격화하고 있다.

추후 CBDC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자산 상품이나 서비스를 전통적 자산과 연결체계를 마련하는 게 프로그마트의 목표다. 즉 자체 플랫폼에서 CBDC·ST·스테이블코인 등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통합 운영하는 한편, 예금이나 채권 등의 전통적 유무형 자산과 일원화된 교환 체계를 마련하는 목표다.

앞으로 미래에 CBDC의 확산이 현금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전망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미 빠르게 진행 중인 현금 없는 사회, 나아가 카드도 없는 사회의 가속화는 확실하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4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내 지급결제에서 현금 비중은 2019년 17.4%에서 2021년 14.6%까지 하락했다. 또한 CBDC가 현금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도, 기존의 현금이 분실위험이나 위조화폐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CBDC가 현금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한 CBDC 상용화는 향후 신용카드 시장 역시 일정 수준 잠식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특히 최근 모바일 간편결제 사용 경험이 크게 늘고, 관련 인프라도 확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관련 업권에선 빅데이터 분석과 AI 기술 활용 등을 통해 개인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패러다임 전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CBDC의 상용화는 필연적으로 전자지갑의 사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전자지갑을 사용한다는 것은 소비 패턴은 물론이고 환전, 입출국 등 개인의 일상 상당 부분을 전산 데이터화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마이데이터 기반 개인 맞춤형 금융이 폭발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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