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EU·미국·영국·중국, ESG공시 의무화 시점 2026년으로 수렴
"한국도 관련 기준 조속히 정비해야 기업들의 대비 용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본회의 모습 /연합뉴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본회의 모습 /연합뉴스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유럽연합(EU)을 필두로 주요국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규제의 새로운 추세로 작동하는 모습이다. 수출입이 중요한 한국 경제의 근본 구조나, 글로벌 각지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우리 기업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이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러한 글로벌 추세에 따르면 2년 앞으로 다가오는 2026년이 중요한 기점 내지는 목표로 굳어지고 있다. ESG 공시 의무화가 사실상 본격화하는 시점인데 각양각처에서 이론이 분분하고 논의와 결정 과정에서 목표 시점을 앞당기고 늦추는 등 크고 작은 변화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주요국의 방침은 우선 그렇게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시 의무화를 포함한 ESG 규제를 선도하고 있는 지역은 단연 유럽이다. 특히 지난 2018년부터 '비재무 정보의 공개 지침'(NFRD, 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을 근거로 기업들에 보고서 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4월에는 적용 대상과 대용이 한층 강화된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이 발표됐다.

가령 NFRD는 임직원 수 500명 이상인 상장사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CSRD는 임직원 수 250명 이상인 EU 및 비EU 기업까지 공시 대상에 포함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EU에 일정 규모의 자회사나 지점이 있을 경우 지침에 따라 지속가능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유럽의회는 지난해 10월 18일 CSRD를 2024년부터 도입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젠 '빼박'이다.

공시 기준은 마찬가지로 유럽의회가 지난해 7월 승인한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ESRS, 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을 따른다. 환경(E)·사회(S)·지배구조(G) 관련 공통기준인 set1은 이미 발표됐고, 산업 및 기업형태별 세분화된 기준인 set2는 2026년 이후 공개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NFRD 공시 의무가 있는 기업은 2024 회계년도부터 CSRD를 적용해야 한다. 2025 회계년도부터는 총자산 2000만유로, 총매출 4000만유로, 연 평균 직원 수 250명 중 두 가지 이상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2026 회계년도에는 상장 중소기업, 신용기관, 보험회사 등까지 범위가 확대될 예정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2026년이 의미를 갖는 목표 해로 거론되는 이유다.

최근의 이슈로는 지난달 7일 EU이사회와 유럽의회가 환경적 영향이 큰 8개 산업에 대한 ESG 공시 도입 시기를 기존보다 2년 유예해 2026년 6월로 결정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또 다시 2026년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유예하는 8개 산업은 ▲석유 및 가스 ▲석탄·채석장 및 광업 ▲도로 운송 ▲농림어업 ▲자동차 ▲에너지 및 유틸리티 ▲음식료 ▲직물·액세서리·신발 및 보석류 등이다.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022년 3월 미국 상장기업의 기후관련 정보공시 의무화 규정 초안을 공개한 바 있다. 기후관련 리스크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된 내용 및 온실가스의 직·간접 배출량 등의 공시가 골자다. 상장기업은 기후위험이 기업의 전략·사업모델 및 전망에 미치는 영향, 기후위험의 평가·관리 관련 지배구조, 기후위험의 평가·관리 프로세스 및 재무제표에 대한 영향 등에 대해 공시하라는 거다.

당초 SEC는 2023년 말 표준안을 확정할 예정이었지만, 스코프3 배출량 공시와 관련해 관련 업계의 우려 등 이론이 분분한 점 등을 감안해 의견수렴 과정을 더 진행하고 올해 4월 경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국이 각 주정부의 권한이 큰 연방국임을 감안할 때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현지에서 활동하고 연 매출 10억달러를 초과하는 상장사 및 비상장사들에 2026년부터 스코프 1, 2, 3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고, 5억달러 이상 기업은 기후관련 재무적 리스크와 리스크 완화 전략을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지난해 마련한 바 있다.

국가들만이 아니라 국제기구도 이와 관련한 기준을 마련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설립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난해 6월 26일 지속가능성 공시를 위한 첫 번째 기준서인 ‘IFRS S1 일반 요구사항’과 ‘IFRS S2 기후 관련 공시’를 확정 발표했다.

아시아 국가인 일본과 싱가포르에선 오는 2025년부터 ISSB가 제시한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에 따라 ESG 공시를 의무화할 것이라고 거론되고 있다. 

중국도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을 포함한 대기업들의 ESG 공시를 2026년부터 의무화하기로 했다. 지난 2월 8일 중국 3대 증권거래소인 상하이 증권거래소, 심천 증권거래소, 베이징 증권거래소는 상장 기업을 위한 새로운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은 EU NFRD의 효과적 이행을 위해 2016년 선도적으로 회사법을 개정한 바 있다. ESG 공시 의무화의 목표 시점은 마찬가지로 2026년이다. 그에 비해 호주는 지난 1월 15일 ESG 공시 의무화를 위한 법개정 초안을 공개했고, 이를 확정해 2024년 하반기부터 기업 규모 등에 따라 순차적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유럽보다 빨리 논의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국가 차원에서 이에 대한 검토가 그렇게 뒤처진 것도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1년 1월 '2021년 녹색금융 추진계획(안)'을 발표하고, 기후리스크 등 환경정보 관련 공시 의무의 단계적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부터 적용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1단계인 2025년까지 자율공시 활성화 ▲2단계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등 일정 규모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대한 공시 의무화 ▲3단계로 2030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에 대해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그 사이 정권이 교체되고, 이에 따라 해당 이슈를 바라보는 정권의 기조도 바뀌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바뀐 거라고 말할 순 없지만, 금융위원회는 2023년 10월 16일 ESG 금융추진단 제3차 회의를 열고, 앞서 살펴본 글로벌 주요국들의 추이 등을 감안해 ESG 공시 도입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인데 ▲미국 등 주요국의 ESG 공시 의무화 계획의 지연 및 연기 ▲국내 ESG 공시의 주요한 참고 기준인 ISSB 기준이 최근인 2023년 6월에야 확정된 점 ▲충분한 준비기간 부여 등을 위해 기업들이 일정 연기 요청이 있었던 점 등을 감안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언젠가 목표 시점은 다가올 것이고, 이미 2024년도 1분기를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시간이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병윤 선임연구위원은 ESG 공시규제 관련 글로벌 현황과 대응방안 보고서를 발표하고 "국제적인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도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조속히 마련해 기업들이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그 시행 시기에 대해선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첨언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이 선임연구위원이 거론한 대목은 미국 대선 등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해당 이슈에 대한 환경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앞서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기업들의 부담 정도도 고려해야 한다. 유연한 정책 운용의 묘가 요구되는 때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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