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한스경제=송진현] 미국과 유럽의 거대 자본들은 오랫동안 국내 금융지주사에 대한 투자를 꺼려왔다.

KB금융지주를 비롯해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회사들은 선진국 금융기관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돼 있는 상태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 안팎에 머물러 있다. 청산가치에도 한참 못 미칠 정도로 이들 금융지주사의 주가가 매우 낮게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낮은 주가수익비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자본이 국내 금융지주사 투자를 망설이는 것은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짙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이들 금융사를 상대로 ‘감놔라 배놔라’하며 각종 규제와 초법적인 지시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본주의 체제에서 도무지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선진국 투자자들은 이런 불확실성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에 대한 손실보상과 관련해서도 정부의 관치금융이 되살아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H지수연계  ELS투자로 손실을 본 39만6000여개의 계좌 소유자들에게 금융사들이 0~100%까지 배상토록 권고하는 분쟁조정안을 11일 발표했다. 투자자들의 연령과 ELS 투자경험 등을 고려하고 은행의 무리한 영업지침 등도 참고해 배상안이 마련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금융감독원의 배상안을 은행이 그대로 수용할 경우 최대 2조원을 투자자들에게 물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은행들은 2021년부터 3년간 H지수 ELS 상품을 15조4000억원어치 판매했다. 그런데 홍콩 H지수의 급락에 따라 은행을 통해 이 상품에 투자한 고객들은 원금이 반토막날 상황에 놓여있다. 이 상품은  증권회사를 통해서도 3조원 가량 팔려나갔다.

금감원은 금융사들의 배상 이행 규모를 살펴보면서 향후 과징금과 임직원 징계수위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른 바 '슈퍼갑'의 입장에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로 하여금 배상안 수용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은 배상안을 강제할 어떤 법적인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선진국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감독 당국의 업무처리 방식이다.

미국을 비롯한 금융 선진국에선 소비자가 금융사에 피해를 봤다고 인식할 경우 보통 소송을 통해 법적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

최근 미국 최대 은행인 체이스은행 고객 5명은 수표발행과 관련, 은행측이 소비자금융보호법을 위반해 최대 30달러의 부당 수수료를 챙겼다며 소송에 나섰다. 금액이 몇십달러에 불과한데도 법적인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미국의 관례다.

일각에서는 금융감독원이 4월10일 총선을 의식해 서둘러 배상안을 발표했다는 견해도 제시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극심한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은행 등 금융사들은 금융감독원의 배상안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필요없이 법적인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키코와 DLF 사태 등 투자자들의 손실이 있을 때마다 금융당국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관치금융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한스경제 발행인>

송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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