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호진 기자] "내 탓이오"라는 말은 어느 때부터인가 정치권에서 가장 듣기 어려운 말이 됐다. 이젠 "네 탓이오"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국민의힘은 무슨 일만 터지면 "문재인 정권 탓이다"라며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고,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탓이다"라며 반격하기에 급급하다.

물론 '정치가 다 그렇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타협' '윈윈(win-win)' '소통' '국민통합' '민생' 등은 온데간데없고 '대치' '신경전' 갈등'만 무성한 현 상황을 두고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가장 억울하고 분한 건 국민이다.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오죽하면 차악(次惡)을 선택할 정도다. 하지만 요즘은 이것마저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아니 정치를 볼 때마다 환멸을 느껴 관심을 꺼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통계청이 지난 3월 23일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기관 중 국회는 24.1%를 기록하면서 10년 연속(2013~2022년) 최하위에 그쳤다. 전년(2021년)에 비해 10.3%p(포인트) 하락했다. 여야 모두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지만, 무책임한 정쟁만 펼친 것에 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책이나 이슈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뚜렷한 색깔이 없다. 김기현 대표는 여름휴가를 마친 뒤 꺼낸 메시지가 "(2023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규모 국제행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민주당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였다.

반대로 민주당은 당 차원의 리더십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사법리스크'에 직면한 이재명 당 대표의 거취가 핵심 문제다. 여기에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노인 폄하' 발언 등으로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대선 패배 이후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여야는 정쟁이 되는 현안을 국정조사 카드로 맞불을 놓고 있다. 국민의힘은 2일 LH 아파트 철근 누락 문제를 두고 국정조사를 언급했다. 이에 민주당은 일주일 뒤인 9일 잼버리 파행으로 야당 압박에 나섰다.

국정조사는 중요한 현안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엄중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등 내놓을 수 있는 제도다. 특정 사안에 대해 국정 전반을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참사나 정권 차원의 비리에 대해 파헤칠 수 있는 국회의 중요 권한이다.

그러나 최근 여야는 국정조사를 언급하는 횟수가 급격히 늘었다. 여야의 국정조사 요구 이면엔 전·현 정부를 겨냥하고 있어 사실상 내년 총선 주도권 확보를 위한 노림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6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안은 15건이다. 이 중 국정조사로 이어진 것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 관련 국정조사가 전부다. 대부분 여야 간 조사 범위, 증인 채택 등에 대한 의견 차이로 실시되지 못했다.

요즘 여야가 주장하고 있는 국정조사 사안들은 정치적 의도가 강하다. 정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 합의를 통한 실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예측이 많다. 현실성 없는 국정조사 카드 남발은 내년 총선까지 계속될 여지가 크다. 국정조사를 고리로 상대 당을 향한 의혹을 키우면서 정국 주도권까지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7일부터 11일까지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무당층은 12.4%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11.5%) 대비 0.9%p 상승했다. 여야 모두 내년 선거를 대비해 밑바닥 표심을 다져야 할 시기에 되려 무당층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민생이 곧 정치다." 정치권은 이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국회가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 역시 국회를 외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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