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천 논란에 휩싸인 민주당은 '이재명 사당(私黨)'이라는 비판에 꼼짝없이 갇혔다.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해도 친명을 제외하면 동조하는 이는 드물다. 국민들은 편 가르고 줄 세운 '비명횡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흔적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친명은 살리고, 비명은 솎아냈다. 정당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까닭에 공천장은 너덜너덜하다. 민주당 역사에서 이런 공천이 또 있었는지 아연하다. 뒤늦게 이재명, 이해찬, 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체제를 띄웠지만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다.

박용진 의원 탈락은 '비명횡사' '친명횡재' 완결판이다. 설마를 현실로 확인한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다. 박 의원은 여야를 넘어 주목받은 정치인이다. 그는 특정 계파에 속하는 것을 거부한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왕성한 의정활동을 펼쳤고, 당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의정활동만 놓고 보면 전체 300명 가운데 1~2%에 포함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부족한 게 있다면 이 대표에게 줄 서지 않았을 뿐이다. 대선후보 경선과 전당대회에서는 이재명 대표와 두 차례 맞붙기도 했다. 친명이 보기엔 '괘씸'하지만 설마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단지 비명이라는 이유로 당내 자산을 기꺼이 날렸다.

그동안 낙천 과정을 복기하자면 납득하기 어려운 게 한둘 아니다. 박 의원은 21대 총선 당시 서울지역 48개 선거구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64.45%)을 기록했다. '유치원 3법' 등 의정활동 이력도 왕성하다. 언론 평가도 후하다. 이재명 대표 또한 2022년 8월 전당대회에서 "박용진 후보도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박 의원을 의원평가 '하위 10%'로 통보했다. 총 득표수에서 30% 감산은 공천 배제나 다름없다. 핸디캡을 안고 나선 경선에서 박 의원은 '비명횡사'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권리당원 51.8%, 지역주민 51.6% 지지를 얻어 정봉주 의원에게 앞섰지만 30% 감산 벽을 넘지 못했다.

박 의원 낙천으로 '비명횡사' 공천 퍼즐은 완성됐다. 그동안 이재명 대표에게 조금이라도 쓴 소리를 했던 이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앞서 홍영표, 박광온, 설훈, 윤영찬, 양기대, 김영주 의원 등은 하위 10~20% 또는 컷오프 됐다. 모두 비명계 인사들이다. 홍영표, 박광온 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이들이다. 당내에서조차 이들이 하위 20%에 포함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허수아비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두 달 동안 거수기 또는 들러리 기구에 머물렀다. 몰살에 가까운 공천 결과 당은 이 대표 친위체제로 재편됐다. 공천을 총괄 지휘한 이 대표는 염불보다 잿밥에 어둡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울 서대문갑 공천은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사례다. 어떡하든 친명 인사를 공천하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뒀다.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는 서대문갑을 청년전략지구로 결정했다. 오디션을 거쳐 애초 3인 경선에 오른 예비후보는 △권지웅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 △김규현 전 서울북부지검 검사 △성치훈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이다. 그러나 다음날 당 최고위원회는 성 부의장을 빼고 김동아 변호사를 경선 후보로 올렸다. 김 변호사는 이 대표 최측근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의 대장동 사건 변호인이다. 뒷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민주당은 공당인지 사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일 철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우리와 적을 나누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자 모든 것"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친명과 비명을 나눈 살생부 공천은 이 대표에게 정치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 대표와 강성 지지층은 자신들과 결이 다른 동료 정치인을 '수박'으로 낙인찍고 선동했다. 상대와 구분 짓고 배제하는 건 전체주의 습속이다. 친명 인사들은 그동안 당내 비명 정치인들을 반대편으로 상정하고 끊임없는 이지메를 가했다. '비명횡사' 공천은 노골적인 선동과 배제 결과다. 언제부터인지 민주당에서 내부 비판은 귀한 일이 됐다. 이 대표 체제 이후 반대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다.

내부 비판을 배신자 또는 회색주의자들로 치부하는 상황에서 "아니오"는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피 흘린 민주당에 "옳소"만 판을 치게 된 배경이다. 내부 비판이 사라진 자리에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돌격 앞으로'만 남았다. 이 대표는 선거구제 개편 과정에서 이미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냐"라는 말로 수단을 정당화 했다. 윤석열 정권에 회의적인 유권자들에게 야당은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라면 선택지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차선이 아닌 차악을 택해야 하는 유권자들 처지만 안쓰럽다. "이건 아니다"는 결기조차 안 보이는 민주당 상황은 암울하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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