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최근 선박 수요 급증과 맞물려 ‘헤비테일’ 계약에 변화 조짐
60∼90%하던 잔금 비중 줄고, 계약금 및 중도금 늘어나
계약 과정에서 선주 대신 조선사 목소리 커져
규모 작은 선박은 계약금 비중 50% 이상 ‘톱헤비’ 증가 관측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연합뉴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현기 기자] 국내 조선사들이 선박 가격 결정은 물론 대금 수령 방식에서도 협상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 선주에게 받는 잔금 비중보다 계약금 및 중도금 비중이 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해운사들의 선박 주문이 늘어남에 따라 선가가 오르고 있다"며 "게다가 도크가 많이 차 있다보니 지금 선박 주문을 받아도 다른 선박부터 건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과 맞물려 조선사들 목소리가 커졌고 결제 방식도 ‘헤비테일(Heavy Tail)’에서 점점 바뀌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도 "같은 헤비테일이어도 최근 계약은 많이 완화된 헤비테일이라 할 수 있다. 계약금을 20% 받기도 한다. 잔금 비율이 딱 50%인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조선사들은 최근 10여년간 선박 대금을 대개 헤비테일 방식으로 받았다. 헤비테일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잔금이 큰 방식이다. 조선사는 계약금과 1∼3차 중도금을 각각 10%씩 받고 선박을 선주에 인도할 때 잔금 60%를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잔금이 80∼90%에 이른다.

조선업계 초기 지불 방식은 스탠더드 방식이었다. 계약금과 1∼3차 중도금, 잔금을 각각 20%씩 선주에게 받았다. 하지만 지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뒤 조선업이 쇠락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다보니 조선사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상실했다. 헤비테일이 보편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 방식은 조선사 입장에서 적지 않은 부담이다. 건조 과정에서 대량의 원자재를 구매해야 하는데 계약금이나 중도금이 적다 보니 유동성에 부딪힐 수 있어서다. 이런 문제 때문에 금융권에 차입하거나 회사채를 발행, 자금을 조달한 뒤 잔금을 선주에게 받고 나서야 빚 갚는 조선사들도 있었다.

그러던 관행이 최근 1년 사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특히 유럽이 러시아 가스 및 원유 의존도를 대폭 줄이고, 카타르 등에서 생산하는 LNG(액화천연가스) 비중을 늘리기로 한 게 컸다.

LNG선 수요가 급증해 지난해 여름 1억8000만달러 수준이던 LNG선 가격이 1년 만인 올 여름 2억4000만달러로 33% 올랐다. 1년 전 1160원에서 최근 1300원 오가는 미국달러당 환율까지 고려하면 선가 상승 폭은 더 크다.

얼마 전부턴 LNG선은 물론 컨테이너선, 석유제품운반선(PC선) 수요까지 치솟아 국내 조선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계약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올해가 아직 넉달이나 남았음에도 한국조선해양 자회사들인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을 비롯해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지난해 말 세워놓은 2022년 연간 수주 목표치를 초과했거나 목표치에 근접했다.

선박 수요가 공급을 초과함에 따라 배를 빨리 넘겨받기 위해 계약금, 중도금 비중을 높이는 선주들이 속속 나타난 셈이다. 조선사 입장에선 계약금을 더 받기 때문에 원자재 조달 등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아울러 오른 환율에 따른 매출액 증가도 이룰 수 있다.

일각에선 국내 조선업계 호황이 중장기화될 경우 계약금이 절반에 이르는 ‘톱헤비(Top Heavy)’ 지불 방식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2000년대 초반 중국 경제 급성장에 따라 선박 수요가 확 늘면서 잠시 생겨났던 결제 방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이나 PC선 같은 중소형 선박은 건조 대금이 작아 선주들이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크게 제시해야 할 것 같다"며 "다만 인플레이션이나 전쟁 등의 변수가 사라지면 선박 수요가 급감할 수도 있어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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