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정우 기자] 휴대전화 시장에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2000년대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팬텍의 ‘스카이’가 있었다. 고유의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었고 이는 지금의 ‘아이폰’과도 비견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입지는 빠르게 좁아졌고 스마트폰 시장으로 전환된 이후에는 시장에 끼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2016년 과거 전성기 이미지를 앞세운 스마트폰으로 다시 도전했지만 결국 스카이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팬텍의 재기 실패는 애플과 삼성전자 중심으로 재편된 스마트폰 전환기 이후 규모의 경제에서 밀려 격차를 좁히지 못한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 잡은 브랜드와 인지도, 자본력, 마케팅 네크워크 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제품과 브랜딩이 필요한데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면 이 같은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최근 인수합병(M&A) 문제로 어수선한 쌍용자동차를 보면 팬텍의 사례가 떠오른다. 쌍용차는 쌍용그룹 산하에 있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SUV ‘코란도’를 선보였고 1990년대 ‘무쏘’, 2000년대 이후 ‘렉스턴’까지 한국 SUV 역사를 써내려온 브랜드다. 무쏘와 함께 고급 세단 ‘체어맨’으로 전성기를 누릴 당시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기술 제휴로 ‘벤츠 엔진을 단 국산차’로 불리기도 했다. 상하이자동차 산하에 있던 2000년대에는 다소 난해한 자동차 디자인을 선보이며 하락세를 맞았지만 BMW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쿠페형 SUV를 한발 먼저 선보이는 도전적인 행보도 보였다.

그런 쌍용차가 2년 가까이 주인 없이 떠돌고 있다. 2020년 마힌드라가 대주주 지위를 포기한 이후 새 인수자로 나섰던 에디슨모터스 측이 최근 인수대금을 미납하면서 투자계약이 해제됐고 재매각을 추진 중이다. 새로운 인수 대상자로는 쌍방울그룹과 KG그룹 등이 거론된다.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와 인수 과정 내내 마찰을 빚었다. 초반부터 무리한 자금 조달 계획과 비현실적인 전기차 사업 계획으로 지적을 받았고 인수계약 체결 이후에도 쌍용차의 법정 관리인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불편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일각에서는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이 쌍용차의 첫 전기차 ‘코란도 이모션’ 출시 제원을 변경하고자 하는 등 인수 마무리 전부터 과도하게 경영에 간섭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필요한 자금 조달에 실패했고 계약 해제에 불복하며 쌍용차와 법정 다툼까지 가게 됐다.

계약이 해제되지 않았더라도 이런 M&A 과정이 성공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영자와 사업 조직이 손발을 맞추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마힌드라 산하에서 노사가 단합해 강도 높은 자구책을 마련한 바 있는 쌍용차의 조직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적인 인수 사례로는 볼보자동차가 있다. 2010년 포드로부터 볼보를 인수한 중국 지리홀딩스는 볼보의 명성과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경영 간섭은 최소화 했고 지금의 볼보를 있게 했다.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한 인도 타타그룹도 같은 전략으로 브랜드 입지를 지켜냈다. 반대로 1990년대까지 명성을 떨친 사브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인수된 이후 글로벌 효율화 전략에 따라 브랜드 경쟁력을 잃고 수명을 다했다.

쌍용차는 보다 강력하고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입장이다. 차량 개발 및 디자인 역량에 대대적인 보완이 필요하고 글로벌 경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마케팅 인프라 확보라는 난관도 넘어야 한다. 이는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며 특히 전기차 전환이라는 시장 변혁기에는 모든 결정이 더욱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새 인수 대상자로 거론되는 기업들도 연일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탈 뿐 쌍용차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대한 청사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자금력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쌍용차의 토지와 설비에 눈독을 들인 것일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국내 완성차업계를 보면 쌍용차와 현대차·기아를 제외하고 옛 대우자동차는 한국GM으로, 삼성자동차는 르노코리아로 변해 사실상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법인이 됐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 없이 스스로 생존에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쌍용차마저 부활에 실패한다면 국내 완성차 생태계는 사실상 와해될 가능성도 있다. 다시 휴대전화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 이후 국내 브랜드 중 삼성전자 외에 대안이 없다는 소비자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단일 기업 체제에서는 시장 건전성과 소비자 편익이 위협을 받는 것이다. 쌍용차를 품을 새 주인이 이 같은 역할의식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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