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흔히 말하는 상식은 누구나 공감하는 정서나 감정을 의미한다. 평균적인 이들이라면 상식 선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사회를 규율하는 법률 또한 상식에 기초한다. 다만 상식과 달리 법은 보다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규정했을 뿐이다. 상식을 벗어날 경우 법률에 저촉될 확률은 매우 높다. 범죄 혐의자를 기소하는 검찰도, 유무죄를 판단하는 법원도 모두 상식에 근거할 때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법 감정이라는 것도 결국은 상식적인 판단이다.

1심 법원이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아들을 통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무죄 판결한 것은 상식에 부합할까. 많은 이들은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상식에 어긋났다는 뜻이다. 국민들이 말하는 상식은 간단하다. 사원이 6년간 근무한 대가로 50억 원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느냐다. 가능하지 않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왜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했을까. 아무리 돈이 넘치는 회사라도 사회 통념을 벗어난 퇴직금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게 상식이다.

이 부분에서 아버지 곽상도 전 의원에게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곽 전 의원은 비록 야당 의원이지만 전 정권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재선 국회의원 신분이었다. 국회의원은 소관 상임위원회와 관계없이 국정 전반을 감독하고 견제한다. 국회의원의 지위나 직무 관련성을 보다 넓게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검찰은 퇴직금 50억 원을 ‘50억 원 클럽’에 속한 곽 전 의원에게 주는 뇌물로 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50억 원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게다가 정영학 회계사 녹취록에는 의심할만한 정황도 있다.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 인정되는 죄.’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제3자 뇌물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받고 있는 여러 혐의 가운데도 제3자 뇌물죄가 포함돼 있다. 검찰은 쌍방울이 북한에 건넨 300만 달러와 성남FC 후원금 160억 원을 이 대표를 위한 제3자 뇌물로 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쌍방울이 북한에 돈을 건네고, 기업들이 성남FC에 거액을 후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검찰은 50억 원은 병채씨 몫이 아니라 곽 전 의원에게 전달 될 수 있다고 봤다. 여기까지가 상식이다.

하지만 1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50억 원은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면서도 “50억 원이 알선과 연결되거나 무엇인가 대가로 건넨 돈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 취지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만배씨에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도 인정하지 않았다. 녹취록에서 김씨는 “병채 아버지(곽상도)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000만원”이라고 언급한 뒤 “‘뭘? 아버지가 뭐 달라냐?’,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재판부는 ‘김씨가 정씨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만 효력이 있을 뿐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쓰일 순 없다고 봤다. ‘전문(轉聞·제3자를 통해 전달된 진술)진술’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법리에 따랐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재판부가 법조문 문구에만 연연한 나머지 상식적인 판단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상식을 벗어났다며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다.

변호사 공익단체 ‘착한 법 만드는 사람들’은 성명서를 통해 “사법부는 ‘50억 클럽’ 부패 카르텔에 대해 상식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상식을 주문했다. 민주당 역시 “검찰의 선택적 부실 수사가 법원의 방탄 판결을 이끌었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심지어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 조차 “초보적 상식도 해소 못 하는 수사·재판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나”라며 1심 판결에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들은 사원이 50억 원 퇴직금을 받은 사실에 더해 ‘50억 원 클럽’ 첫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자 균형을 잃은 판결이라며 허탈해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인력을 보강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퇴직금 50억 원과 곽 전 의원 사이 연결고리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 이와는 별개로 민주당 일부에서 곽 전 의원 무죄 판결을 조국 전 장관의 딸 장학금과 연결하는 건 몰염치하다. 이들은 “조국 전 장관의 딸 장학금 600만원은 뇌물이 되고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퇴직금 50억 원은 솜방망이로도 때리지 않는 판결에 대해 국민들은 좌절하고 허탈해한다”고 주장했다. 억지스러운 비교이자 낯 뜨거운 선동이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상식은 아니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