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2022년에서 2023년으로 바뀌는 이틀 동안 끊임없이 카톡이 울렸다.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새해를 축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쉴 새 없는 카톡 소리가 거슬렸지만 고마운 면도 없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따뜻한 일이다. 더불어 신년을 핑계로 그동안 뜸했던 이들과 다시 연락이 닿고 안부를 묻는 건 반갑다. 때론 지나친 인연이 피곤하지만 혼자 살겠다고 각오하지 않는 한 받아들여야 한다. 다소 건조하게 말하자면 새해는 어제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즈음 안부를 묻는 건 외롭다는 뜻이다. 외로움은 후회와 자책을 수반한다.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은 부질없지만 때로는 다시 시작하는 힘이다.

살면서 가장 슬픈 말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또는 처한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미국 시인 존 그린리프 휘티어는 “~했었더라면(It might have been)”이라고 했다. 그는 ‘모드 뮬러(Maud Muller)’란 시에서 “말이든 글이든 모든 슬픈 말들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그때 왜 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독보적 영어책> 사람은 상실이나 절망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삶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을 했거나 때로는 박약한 의지 때문에 포기한 것을 아쉬워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진들도 비슷한 체험을 털어놓는다. 임종 직전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때 왜 하지 않았을까”라는 회한과 자책이라고 한다.

영화 <박하사탕>은 암울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시대상황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는지 보여준다. 군복무 시절 5.18광주 진압작전에 투입된 주인공 영호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제대 후 경찰에 투신한다. 그는 시위 대학생을 모질게 고문하며 죄책감에 겪는다. 경찰을 그만두고 사업가로 변신한 뒤에도 불륜과 아내 폭행을 이어간다. 자살은 막장에서 선택한 도피처였다. 영호는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외침과 함께 기차에 몸을 던진다. ‘그때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하는 후회와 회한은 거꾸로 달리는 기차가 되어 스쳐간다. 첫사랑 순임과 재회는 오픈닝 장면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젊은 시절 죄책감에서 순임을 떠나보냈던 영호는 중년이 되어 죽음을 앞두고 순임을 찾는다. 순임의 뺨 위로 조용히 눈물이 흐른다. 순임은 비록 의식은 없지만 순수했던 때를 떠올린 것이다. 순임의 눈물, 영호의 죽음은 지난 시간에 대한 아프고, 부질없는 후회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두려워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 선고와 함께 시베리아로 유배 되었다. 그는 혹독한 시련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자신이 택한 결정을 후회하는 대신 고난을 밑천삼아 스스로를 증명했다. 인류 문학사에 빛나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 형제들>이 유형 이후에 탄생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산 정약용과 사마천 또한 치욕과 고난을 뛰어넘어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누군가는 “~했었더라면”하며 자책하고 좌절할 때 다른 누군가는 그런 상황을 넘어 우뚝 섰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이 겪은 고통이 무의미하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존재 이유 때문이다.

올해 세계경제는 어느 때보다 혹독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경제지표가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데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다. 국내 경제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다.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으로 ‘영끌 족’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빚을 내어 주식에 투자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수출 또한 지난해 사상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무역 적자 폭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물가 또한 가파르게 치솟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영업, 가계 가릴 것 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안보환경도 녹록치 않다. 총체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탈출구는 여의치 않다. 터널 끝이 어디인지 누구도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게 분명하다. 지난해 수없이 반복했던 “~했었더라면”에서 자유로울 기업과 개인은 많지 않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던 빅터 프랭클은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며 자신의 체험을 소개했다. 아우슈비츠 수감자 사망률은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까지 불과 일주일 동안 급증했는데 가혹한 노동조건이나 식량 사정 악화, 기후 변화, 새로운 전염병이 원인은 아니었다. 왜 사망자가 급증했을까. 프랭클 박사는 “그해 겨울 성탄절이면 전쟁이 끝나 집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기대가 무산되면서 사망률이 치솟았다”고 했다. 절망감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제시할 책임이 정치에 있다. 정치가 희망의 크기를 키우려면 상대를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 부디 올 연말에는 “~했었더라면”하는 자책과 후회가 없었으면 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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