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실 국민연금 사내벤처 대표
                                           권우실 국민연금 사내벤처 대표

[한스경제/ 권우실 국민연금 사내벤처 대표] 잊을 수 없는 새벽이었다. 대한민국 축구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온 국민이 공과 선수들 움직임에 세세히 반응하며 아쉬워하고 감탄하고 소리 지르며 응원했다. 한겨울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2022 카타르 월드컵이었다. 합이 잘 맞는 원팀(One-Team)이 경기를 주도하는 게 느껴졌다. 공이 발에 붙는 듯한 몇 번의 정확한 패스를 거치면 어느새 상대 진영에서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빌드업 축구다.

빌드업(Build-up)이란 원래 ‘플레이를 만드는 방식’이란 뜻으로 축구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압박을 물리치고 상대 진영으로 진행하는 일련의 공격 전개 움직임을 말한다. 다시 말해 골키퍼를 포함한 모든 포지션의 선수를 활용해 촘촘하게 패스 워크를 쌓아 올리며 공격해 나가는 것이다. 핵심은 협업이다. 모든 선수가 각자의 자리에서 압박을 견뎌내며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고도의 전술이다. 서로 신뢰하고 최선을 다해 하나의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선수들을 보면서 ESG라는 큰 숙제를 함께 풀어낼 파트너와의 협업도 ‘빌드업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SG도 협업이 KEY다. ESG 경영은 다른 회사와 경쟁해 더 높은 평가 등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세대의 필요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규제다. ESG 경영을 잘한다고 손꼽히는 유니레버는 자사의 라이벌을 P&G나 네슬레가 아니라 기후 위기와 빈곤이라고 상정했다. 매년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파타고니아는 최근 회사 지분 100%를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했다.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다. 우리가 함께 나아갈 방향은 이 지구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이다. 공동의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기관과 소셜벤처의 협업이다.

공공기관 직원으로 20년, 사내벤처 대표로 2년째 활동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 업무를 해왔고 현재는 ESG 경영부 소속이다. 동시에 공공기관의 혁신성 제고를 위한 사내벤처 제도 도입으로 벤처 활동을 하고 있다. 흔치 않은 경력 덕분에 공공과 벤처 양쪽 시장을 동시에 본다. 공공기관에도 ESG 열풍이 불며 대부분 담당자들은 ESG 경영이 기존의 사회적 가치 실현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어떻게 업에 내재화해야 하는지 고민과 부담이 크다. 또한 경기침체에 따른 벤처 투자 축소, 시장 악화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사업을 지속할 수익 창출이 쉽지만은 않은 소셜벤처가 있다. 각자 앞만 보고 가는 경주마처럼 목표만 보고 고군분투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에는 중앙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 등 1,600개가 넘는 공공기관이 있다. 공공기관은 정부를 대신하여 필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국민, 국회, 언론, 이익단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를 갖고 있고 특히 정부 정책과 평가 지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ESG 요소 역시 공공기관이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경영평가에 배점으로 존재한다. 매년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기관장 해임 또는 성과급 지급으로 연결되니 핵심 이슈일 수밖에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의 사회적 가치(지역 상생, 일자리 창출) 구현의 높은 배점은 유지하면서 녹색제품 구매실적, 온실가스 감축 실적, ESG 경영공시, 협력업체 ESG 경영지원 등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요소들이 계속 추가되는 추세다. 문제는 환경(E), 사회(S)의 문제를 혼자서는 풀기 어렵다는 점이다. 

소셜벤처는 혁신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기업이다. 인권 보호, 환경 보전, 공동체 이익 실현, 빈곤과 불평등 해소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의 환경과 사회문제 지표를 함께 풀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파트너다. 소셜벤처 입장에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시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신력 있는 테스트베드가 절실하다. 이 또한 공공기관이 동반성장 과제를 해결하며 제공할 수 있는 협업 구조다.

공공기관의 라이벌은 다른 공공기관이 아니다. 소셜벤처의 라이벌은 다른 소셜벤처가 아니다. 우리가 이루어낼 것은 빌드업 축구와 같은 단단한 협업이다. 지속가능이라는 목표를 위해 공공기관과 소셜벤처의 연결이 더 많이, 더 자주 이루어졌으면 한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는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질적인 두 기관이 연결될 때 예상 못한 신선한 시너지에 놀랄 수 있다. 마치 옛날 밀가루 브랜드가 맥주를 만나 케미가 폭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넣으면 종별을 인식하고 사용자에게 포인트로 리워드를 주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분리수거함을 만들어낸 소셜벤처는 공공과 협업하며 환경(E) 지표를 개선한다. 시각·청각·지체 장애인을 위한 보조 공학 기술을 탑재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개발한 소셜벤처는 공공영역에 설치되어 사회(S)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관내 카페거리에서 증가하는 일반폐기물 커피박의 재자원화를 위해 기업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지자체도 있다. 

공공기관과 소셜벤처의 빌드업을 위해서는 첫째 자주 만나야 한다. 막상 협업하고 싶어도 상대를 어디서 만나야 할지 막막하다. 공공기관 ESG 담당자는 소셜벤처와의 만남을 자주, 이왕이면 정기적으로 주최해 보자. 한두 시간의 형식적인 간담회로는 좋은 파트너가 나와도 알아볼 수가 없다.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나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함께 만남을 기획해도 좋다. 물론 업무 환경이 보수적이고 기존 관행대로 진행되는 의사결정이 일반적인 공공기관에서 새로운 주체와의 협업이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초유의 환경 변화 속에서 현명한 성장을 꾀해야 한다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파트너와의 새로운 일을 궁리하는 모험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소셜벤처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협력자를 찾아내 상대의 언어로 강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공공기관의 어떤 지표에 큰 영향을 줄지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면 협업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기관 홈페이지, 알리오 경영 공시, 경영평가보고서, 사회적 가치 플랫폼 등 상대에 관한 공부도 기본이다. 느낌대로도 좋지만, 이왕이면 데이트 준비를 하고 나간 쪽이 매칭 확률도 높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공공기관과 소셜벤처는 모두 ESG의 주체이자 서로의 이해관계자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혜택을 받는 대상이 된다거나 평가에만 매몰되어 형식적인 동반성장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EU의 공급망 실사법 적용이 확산 일로에 있다. 다국적기업 공급망에 연결된 협력사의 인권 및 환경에 대한 침해 여부를 조사한 뒤 문제가 있는 경우 이를 시정하고 공개하게 하는 공급망 실사법에서 국내 기업과 기관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중기부에서 발표한 중소기업 ESG 지원 고도화 방안에 따르면 민관 협력 방식의 중소기업 ESG 지원을 확대한다고 한다. 공공기관 역시 민간 협력업체 ESG 경영지원이 주요한 미션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공동의 숙제가 있다. 파트너를 찾아내 역할을 나누고 빌드업 할 때다.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다. 

 

권우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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